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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한 소리 Sep 27. 2023

SKIP 할 일과 SKIP 하면 안 되는 말

 글을 쓸 때 가장 집중하는 작업은 필요 없는 부분을 생략하는 작업입니다. 굳이 없어도 되는 구절, 반복해서 쓰인 구절, 잘못된 정보, 누군가에게 상처 줄 수 있는 표현, 시대감수성에 뒤쳐진 표현들을 찾아서 지웁니다. 글을 쓸 때에는 지울 것 하나 없는 순도 높은 글을 쓴다고 착각하는데, 막상 생략할 때 보면 지울 것 투성입니다. 그래서 건질 것 별로 없는 맹숭한 글만 쓴다는 반성과 함께 생략하는 작업을 열심히 합니다. 


 생략하는 작업이 필요한 순간은 또 있는데, 핸드폰으로 영상 볼 때입니다. 보고 싶지 않은 광고나 이미 알고 있는 전편 줄거리, 바로 이어서 볼 예정이라서 필요 없는 다음 편 예고까지 생략(skip)하면 너무 편하지요. 뿐만 아니라 핸드폰 밖에서도 생략은 우리를 도와줍니다. 같은 상을 다수가 받을 때 내용은 생략하고 이름만 부르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학교 조회시간에 그 누구도 듣지 않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말씀을 생략하면 학생들이 활기차게 수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의미 없는 겉치레를 생략하면 서로가 편하고, 업무와 상관없는 상사의 꼰대질을 생략하면 오히려 업무 효율성이 올라갑니다. 


 이와 같이 필요 없는 것을 생략하면 글은 간결해지고, 일은 효율적이 되며, 사람은 편해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도 똑같습니다. 잘 찾아보면 필요 없는데 굳이 반복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는 나도 불편하고 주변 사람도 힘들게 하지만, 습관처럼 계속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맹숭한 글을 쓰면서 순도 높은 글을 쓴다고 착각하는 저처럼, 필요 없는 일들을 굳이 끌어안고 힘겹게 살면서 열심히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 하루도 생략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우리 하루도 간결해지고 편해집니다. 


 물론 생략하면 안 되는 중요한 부분은 생략하지 말아야겠지요. 너무 뻔하고 당연해서 생략해도 되는 이야기입니다만, 그럼에도 언급하는 이유는 때때로 생략하면 안 되는 부분까지 생략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략이 주는 편리함은 달콤하고, 그에 반해서 생략하지 않고 묵묵히 그 일을 하면서 견뎌야 하는 불편함은 맛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약이 쓰더라도 건강을 위해서 약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불편해도 해야 하는 일이 있고, 효율적이지 않음에도 생략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한걸음 나아가 우리가 하는 대화 속에서도 생략해야 하는 말이 있고 생략하지 말아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걱정해서, 잘 되라는 바람으로, 내가 알고 있어서, 이런저런 나 자신의 이유로 상대방에게 하는 말 중에서 굳이 할 필요 없는 말들이 너무 많습니다. 차라리 생략하면 좋은 말들을 우리는 참 많이 합니다. 반대로 생략하면 안 되는 말들은 쉽게 생략합니다. 책 <무지개원리>에서 저자 차동엽 신부는 말하는 자신과 듣는 상대방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마법 같은  3가지 “매직워드”를 소개합니다. 미안합니다!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매직워드라고 하기에 너무 사소합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거니, 당연한 일이고 반복되는 일이니 하지 않아도 되겠거니 하면서 우리가 자주 생략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사소한 말이야 말로 생략하면 안 되는 매직워드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 생각하지 말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합시다.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지 말고 공손히 부탁합시다. 그리고 감사하다고 말합시다. 추석 연휴에 가족들을 만날 텐데, 생략해도 되는 말은 생략하고, 생략하지 말아야 하는 매직워드는 많이 말합시다. 


미안합니다!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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