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덕질이라고는 태어나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그 찬란하고 유난한 팬덤이 처음 생겼을 때도 친구들이 하나 둘 덕질의 세계로 떠나갈 때도, 그 흔한 책받침 하나 사본적이 없었다. 아마 그 시절의 나는 멀리 있는 사랑스러운 누군가 보다 나에게 온기를 전해줄 직접적인 누군가가 더 필요했겠지.
그리고 이제, 덕질은 나의 의지가 아닌 알고리즘이 저절로 시켜주는 시대에 산다. 우연히 마주친 영상 하나에 무심코 조금의 관심을 더 쏟는다면 알고리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또 다른, 그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유사 콘텐츠를 들이밀면서 기어코 하나의 대상에 대한 관심을 차곡차곡 쌓아가게 만든다. 잠시 잊었다 다시 들어가 보면 나도 모르는 새 나는 누군가의 팬임에 틀림없다는 듯이, 기다렸다는 듯 관련 콘텐츠들을 잔뜩 맞이하게 된다.
이 모든 메커니즘을 뻔히 알면서도 이번엔 속절없이, 반쯤은 모르는 듯이 이끌려 덕질 아닌 덕질이 시작되었다. 대상은 이번에 컴백한 지드래곤. 내 20대 시절의 가장 찬란했던 가수 중 한 명인 그가 낯설지 않은 것은 당연하나, 익숙한 노래의 주인공과 무한도전에서 자주 보이던 모습 정도가 내가 기억하는 전부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무고하게 마약사건에 연루된 불운한 가수 정도까지.
새롭게 앨범을 낸 그의 모습이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무언가 달라진 모습 때문이었다. 어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그는 어딘가 확실히 달라졌다. 말투가 한껏 느려졌고 톤은 낮아졌으며 말투도 어눌하다. 저렇게 잠시도 손발을 가만두지 못하는 모습도, 응시조차 할 수 없이 산만한 눈빛도 그 옛날 그의 모습은 분명 아닌 듯싶다. 그런데 과거와 달라진 그의 모습이 마냥 불안하거나 망가져 보이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오히려 편안해 보인다. 뭘까. 그는 대중의 시선에서 잠시 비껴있는 시간 동안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뭔가 자꾸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에서 보여주는 무려 10년도 넘은 과거의 그와 현재의 그가 뒤죽박죽 섞여 보인다. 그는 어린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두었고 계속되는 대중의 기대를 끊임없이 뛰어넘는 굉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대에 부응한다는 것은 장르가 어떠하든 굉장한 압박감을 가져다주는 일인데, 그는 그 압박감 속에서도 계속해서 잘 해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겨난 생채기들을 치유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끝없는 번영을 이루는 나라가 없듯이, 업 앤 다운의 파도는 그에게도 찾아왔다.
다운의 시기를 잘 이겨내는 것은 아무나 해내는 것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나는 내가 왜 그의 변한 모습에 자꾸만 눈길이 갔는지 깨달았다. 그는, 살아남아 돌아왔다. 다운의 시기에서 모두가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오지 못했던 안타까운 이들의 모습이 하나 둘 떠오른다. 조금 달라져도, 누군가를 실망시킨다 해도 괜찮다. 그 수많은 순간들에 이미 사람들에게 굉장한 기쁨과 환희가 되어주었던 것만으로도 너무나 대단한 일이건만. 그래서 조금은 편해진 모습으로, 그렇지만 여전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준 그에게 왠지 고맙고 애틋한 기분이 드는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겐 오히려 지금의 그의 모습이 참 멋있다. 아이고, 이 나이에 당분간은 덕질이란 것을 계속하게 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