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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만들어 내는 것

by Decenter

자신만의 이유. 자유.


식탁에 오르지 못한다고 해서 독버섯에게 존재의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식탁의 논리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판단할 필요는 없다는 신영복 선생님의 예시는 만나자마자 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았었다.


자신만의 이유로 사는 삶. 자유로운 삶의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30대가 훌쩍 넘어서였다. 진로를 결정해야 했던 10대, 그리고 그럴듯한 직장을 가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20대의 내가 먼저 알았으면 좋았을 것 같은 이 생각을 나는 너무 늦게야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20대 전체가 나만의 이유와 동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언론을 공부하면서 나는 뉴스의 영향력과 공정한 뉴스, 우리 사회에서 뉴스의 역할에 대해 더욱 알고 싶었고 투명하고 정당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언론, 뉴스를 꿈꿨다. 그것이 어쩌면 나의 존재 이유, 나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주제였던 게 아닐까 싶다. 좀 더 공정한, 정의로움에 가까운 뉴스의 조건을, 그런 뉴스를 발견하고 정의하고. 그래서 어쩌면 세상의 뉴스가 바뀌는데 기여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고작 나는 유학을 포기하면서, 그리고 논문을 쓰는 과정에 지쳐서 그 꿈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나만의 이유, 자유가 되어줄 문제의식과 삶의 목표를 새롭게 설정하는데 실패했다.


지금 하는 일은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변화하는 세상의 질서를 정의하고 설명하는데 가깝다. 생각해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은데 '언론'이 '새로운 기술'로 바뀌면서 나는 너무 수동적으로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데 급급해졌다. 내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궁금한 것을 해결하는 일. 그래서 나는 자꾸만 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내 안에서 질문이 생겨나지 않으니까.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여전히 내 안에 질문이 생기지 않는다며 수동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다시 뉴스라는 주제로 돌아갈 것인가. 이 두 가지는 사실 옵션이 아니다. 현재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지. 내 자리에서, 나만의 이유를 찾는 것. 질문을 만들어 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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