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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삶

by Decenter

예전에는 마음이 급박한 상태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겼다고 봐야겠다.


마음이 급박해서 일들을 빠르게 처리해내고 나면 마치 시간대비 매우 효율적으로 일을 해낸 것만 같았다. 특히나 그때만 발휘되는 집중력이 좋았고, 그렇게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듯한 기분이 매번 썩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처리한 일들은 늘 조금의 아쉬움을 남겼다. 시간이 부족해서 포기해 버린 것들을 그저 '끝냈다'는 기쁨으로 가려왔는지 모르겠다. 늘 생각이 많고 제법 완벽함을 추구하는지라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오래 받기 싫어 택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빠른 시간에 끝내버린다,라는 태도.


그런데 문득, 글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나의 수많은 생각을 담아내는 글은 급히 쓰면 당연히 그만큼의 티가 난다. 내가 가장 크게 느끼는 티는 '다시 읽고 싶은' 정도다. 내가 안정적이고 여유가 있을 때 쓴 글은 다시 읽고 싶어 지지만 급히 쓴 글은 숙제하듯 꾸역꾸역 짜낸 듯해서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매일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지만 막상 차일피일 미루다 밤 11시가 넘어 글을 쓰고자 하면 늘 그러하다. 숙제하듯이라도 써야 쓰는 근육이 늘겠지라고 위안해 보지만 불편한 마음은 매번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는 글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닌가 싶다.


급하게 먹으면 체하고, 급하게 쓴 글은 어설프며, 급하게 처리한 일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제는 더 이상 '급히' 끌어다 써지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좀 더, 차분해질 때인 것 같다. 어쩌면 삶의 태도 자체가 바뀌어야 할 때 인지도. 무엇이든 계획을 할 때 '최소 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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