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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고택에 머문다면

by Decenter

고즈넉한 한옥 마을을 걷는다.


여기는 경북 청송 송소고택. 조선 말기에 지어진 기와집이다. 만석꾼이었던 주인이 지은 집은 임금이 있는 국가의 신하로서 지을 수 있는 가장 넓은 집, 99칸의 방이 있는 기와집이었다. 세월이 흘러 각 방은 이제 묵고자 하는 이에게 방을 빌려주는 곳이 되었다.


대문을 넘어 들면 마당 한가운데 큰 나무가 한 그루 보인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집의 형태. 안마당으로 이어지는 문을 하나 더 지나면 안채가 나온다. 대청마루를 끼고 양옆으로 자리한 방들. 마당 한편에는 우물이 있고 큰 솥이 걸렸을 법한 부엌도 보인다. 그리고 각 방 앞에 놓인 가지런한 하얀 고무신들. 고택을 일부러 찾아온 이들에게 제공하는 '옛 생활' 체험의 일환이지 싶다.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간다. 활짝, 걸쇠가 있는 한지가 발린 문을 열고, 또 안의 미닫이 문을 양옆으로 밀어 들어가면 한 칸, 방이다. 이곳에 있는 방들은 크기가 다를 뿐 한 객식구에게 배정되는 방은 그저 한 칸이다. 그래도 옆에 대청마루가 딸려있으니 제법 좋은 방을 배정받은 셈이지만 마냥 좋을 것도 없다. 따뜻한 구들목은 오직 방에만 허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얇디얇은 한지 문 하나 사이에 두었을 뿐이지만 대청마루와 방의 온도는 천지차이다. 아 대청마루라고 앞이 뻥 뚫린 것이 아니라 앞에 문이 있어 닫을 수 있다. 하지만 영하 날씨에 대청마루를 즐기기에는 영 틀린 듯싶다.


방 안의 공기가 따스하지 않아 걱정도 잠시, 바닥에 깔아 둔 이불 밑으로 다리를 밀어 넣어보니 뜨끈뜨끈한 열기에 나도 모르게 이불을 더욱 끌어당기게 된다. 쩔쩔 끓는듯한 방바닥이 흡사 찜질방 같아 순식간에 몸이 노곤노곤해진다. 아이고 나는 못 움직이겠소. 일단 세 가족 옹기종기 한 이불 아래 몸을 쉬어 본다.


칠흑 같은 밤을 보내고 난 아침. 걸쇠를 열고 문을 열어젖히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밤새 온 눈으로 온통 하얀 세상인데, 아직도 눈이 한창이다. 기와지붕, 마당, 나무들과 우물 덮개 위로 소복이 쌓인 눈이란. 운치가 절정이다.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으며 후원으로 나가 본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로 발자국을 남기는 것도, 옹기종기 모여있는 옹기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보는 것도 모든 순간이 너무도 평온하고 아름답다.


하루종일 한 일이라곤 서너 시간마다 한 번씩 동네를 산책하고, 차를 마시고, 방에 틀어박혀 간식을 까먹으며 가져온 책을 본 것 밖에 없다. 그러려고 왔으니 하릴없이 떠도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평생 살면서 처음 와본 동네이며, 다시 올 일이 있겠냐 했던 동네이지만 어째 떠날 때 즈음에는 다음 방문 계획을 짜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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