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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에 진심인 자의 동기부여

'해야 되면 하는' 삶은 결국 '반드시'가 붙지 않는 한.

by Decenter

이래서 사람이 습관이 무섭다, 무섭다 하는 거다.


1월 1일. 야심 차게 시작한 365일 글쓰기를 하루하루 이어가는 것은 그렇게도 힘들었는데, 한 번 놓치기 시작하니 글 쓴 지가 벌써 거의 2주가 다 되어가고 있다. 그것도 마지막 글이 거의 일주일 만이었으니 사실 3주는 놓친 셈이다. 다시 세어보면서도 뜨끔, 너무나 놀랐다. 한 열흘 되었으려나 하고 차일피일 미뤄온 차였으니.


그저 한 줄이라도, 한 문단이라도 쓰면 되는 것이련만 역시, 루틴을 만든다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그리고 그것은 일도 마찬가지다.


나는 분명, 일에서 오는 성취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 분야에서 인정받고 싶고, 결과물을 자식처럼 사랑한다. 일을 시작한 이래 언제나 자신 있게 말하던 것이 있었다. 세상에 로또가 당첨되면 일을 때려치울 사람과 더 신나게 일할 사람이 있는데 나는 당연히, 후자라고.


그리고 심지어 낮밤 없이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저렇게까지 열정을 쏟을 무언가를 찾았다는 것이. 그래서 저런 '열심'이 모여 그 사람들이 만들어낼 어떤 성취가. 그렇다.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성취까지 생각하며 부러웠다. 세상의 모든 성공신화는 그런 것이니까.


그렇지만 이 모든 성취에 대한 이미지들은 결국, 결과만을 바라보는 절반쯤 허상이다. 세상에 노력한다고 모두가 만족할만한 성취를 얻는다면야, 노력에 결과가 비례한다면 그렇게 심플한 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것을 알고도 나는 늘, 그 허상을 쫒는 노력이, 열정의 스토리가 가슴에 와닿았다.


그런 것치곤 일하는 과정은 늘 순탄치 않았다. 순간적인 집중이 주는 희열이 있었지만, 그 희열이 항상 다른 모든 충동과 도파민들을 물리칠 만큼은 아니었다, 당연히. 모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노력이 나에게는 늘 너무도 어려웠고, 그렇게 쉽게 충동과 도파민을 따라가면서 나 자신과 타협을 일삼았다. 어떻게 늘 노력을 하고 사느냐고. 벼락치기도 미덕이라며.


일에 있어 더 많은 자율성이 주어진 지금, 일은 사실상 일상 루틴에서 사라진 것과 다름없다. 분명 매일 할 일이 있고, 하고 나면 뿌듯하고 희열도 있겠지만 일을 하는 날 보다 하지 않는 날이 오히려 더 많다. 이제는 타협 수준이 아니라 자기혐오를 넘어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지만 여전히 의문은 있다. 그렇게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일을 선택하던 나의 자아는 정말 그저 반짝반짝한 성취만을 거저먹고자 했던 도둑놈 심보가 근본이었던 건가, 하는.


'해야 되면 하는' 삶은 결국 그 앞에 '반드시'가 붙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해야 돼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 더 나아서, 혹은 매우 이상적 이게도 하는 것이 좋아서, 일을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본다. 하는 것이 어떤 이유이든 하는 것이 더 나아서,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네가 좋아하는 '일에서 오는 성취'를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게 할 수 있으니 하자 정도는 어떨까. 나에게 이렇게 말해보는 거다.


"하는 게 더 좋잖아. 나쁘지 않잖아.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다른 일 보다 이 일을 하는 것이 결국 너에게 가장 큰 기쁨을 가져다줄 거잖아. 그래. 지연된 기쁨일지언정 결국 너에게 가장 큰 기쁨을 가져다줄 것은 결국 네가 조금이라도, 지겹고 당장의 성취는 없지만 결국은 결과를 만들어 낼 이 일을 하는 거야."


다시 읽어보니 참, 나는 늘 나의 '기쁨'에 진심인 사람이구나. 성취를 이룬 내가 느낄 기쁨. 그러니 역설적으로, 매 순간 나를 '기쁘게' 해 줄 다른 일들에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이겠지. 하지만 맞다. 더이상 나에게 '일에서 오는 기쁨'이란 것을 느낄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에서 오는 성취가 그 어느 것 보다도 나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이니. 그러니 자, 또 다시. 3주 만에 글을 쓰듯 다시 일하는 루틴을 만들어 보자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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