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왔다.
눈이 온다고 할 때는 그저 또 이상기후인가 보다 했지만 막상 흩날린 것도 아니고 밤사이 5cm는 넘게 소복이 쌓인 눈을 보니 그저 어리둥절하다.
한참 봄을 준비하는 때다. 겨우내 입었던 두꺼운 옷들이 옷걸이 구석으로 밀려나고, 두서없이 꺼내든 봄옷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괜스레 밝은 옷이 더 눈에 띄고 한파를 막아주었던 두툼한 옷들이 둔한 옷으로 느껴지는 이때, 하늘은 농담처럼 눈을 흩뿌린다.
계절이 바뀌는 것에 가장 민감한 것 중 하나는 매일 틀어두는 플레이리스트들이다. 저마다 사용자들의 선택을 받고자 기나긴 제목을 자랑하는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들이 가장 선호하는 제목 중 하나가 날씨다. 쌀쌀하고 흐린 바람이 부는 바로 지금 듣기 좋은 노래, 봄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아침의 재즈, 파리의 가을을 걸으면 들을 수 있는 감성적인 플리 등등이다. 최근엔 벌써 플레이리스트의 배경들에 벚꽃이 등장하기 시작한 참이었다. 봄을 알리는 갖은 미사여구와 그에 걸맞은 플레이리스트들. 사실 들어보면 그저 템포의 차이 일 뿐일 때도 많지만, 이미 계절과 기분을 반영하여 선택한 리스트니 그에 맞는 감성을 덧씌워 듣게 되는 것이다.
오늘 같은 날 플레이리스트의 이름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봄인 줄 깜빡 속은 눈 오는 3월에 듣기 좋은 플리?, 눈이 오는 봄에 집에서 들어야 할 노래? 변덕스러운 날씨에 어울리는 변덕스러운 플레이리스트? 역시, 일상적이지 않은 것이 자극적이다.
쌓인 눈 무색하게 창가에 볕이 비쳐온다. 변덕스러운 날씨를 볼 때마다 습관처럼 지구가 아파요, 하지만 지구의 변덕이 선사하는 것은 슬픔만은 아닌가 보다. 난데없고 두서없는 날씨가 묘하게 기분을 달뜨게도, 변덕스럽게도 한다. 오늘의 플리는 아무래도 변덕이 가져다주는 '충동적이고 싶은 날 어울리는 노래' 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