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큰 발표를 하나 끝냈다.
몇 달을 끙끙대던 것이었다. 막판에서야 큰 도움을 받아 방향성이 잡히고, 그렇게 어째 어째 마무리가 된 내용이다. 그런데 방향이 잡히기 전까지는 우왕좌왕했던 것이 사실이고, 최근 자기 합리화를 하지 말자는 기조에 맞춰 너무 준비되지 않았음을 드러내다 보니 주변의 걱정을 많이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과정을 겪어내면서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일에 있어서는 너무 솔직할 필요가 없다는 것. 자기 합리화와 변명, 기만의 가면을 벗기로 했지만 일에 있어서 만큼은 과한 솔직함이 오히려 주변을 불안하게 했다. 그 결과 오히려 과한 피드백이 오게 되고, 그래서 더 갈팡질팡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일은, 프로페셔널하게. 좀 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타인에게 보여주면서 나아갈 필요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발표. 최근 복용하기 시작한 ADHD약의 가장 대표적인 장점 중의 하나는 차분해지면서 동시에 그전에 산만함에 빼앗기던 에너지를 일상에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부작용 때문에 약을 바꾸자 차분해 지기만 했다. 차분해지기는 했는데, 에너지가 생기는 정도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 그 결과가 발표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동안 나의 발표는 말하다 보면 나의 생각을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고자 하는 의지가 발현되어 좋게 말하면 감화, 나쁘게 말하면 소위 '선동'의 영역이 있었다. 정치하는 줄 알았다 수준의 청중을 집중시키는 힘이 분명 내 발표에는 있었는데, 이번 발표는 달랐던 것이다. 차분했고, 그래서 매우 차분하고 이성적인 발표가 이어졌다. '당연히 이렇게 될 수밖에' 없던 것이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냐'가 된 변화는 결코 작지 않은 것이었다.
누군가는 그 변화를 '발표 스킬이 더 늘어난 것'으로 받아들였으나 혹자는 그 변화를 '심심해졌다'로 평가했다. 나는? 발표를 끝내고 내가 느낀 것은 무언가 찝찝한 기분이었다. 모두 쏟아내지 못한 기분. 분명 잘한 것도 같은데 다 하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약의 효과는 이렇게나 명징해서, 조정해 나가는 과정을 요구하고 있구나 싶다. 나 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새롭게 차분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일 것이라 믿고, 좀 더 시간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