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성당

by Decenter

우연이 많은 요즘이다. 혹은 그 많은 우연들에 일부러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에 나에게 찾아온 우연들은 썩 마음에 들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성당에 나가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한 지 9년 차. 딱 그만큼의 시간만큼 나의 신앙생활도 멈췄다. 처음엔 '유아방'이라는 곳에 부득불 나가보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미사에서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었던 바, 오히려 스트레스만 잔뜩 받고는 그 화살이 행여 아이에게 가는 수준의 나의 부족이 드러나기 전에 아예 발길을 끊는 쪽을 택해버렸다.


그리고 최근,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그렇게도 무쓸모에 다 부질없다는 '아이친구엄마'인데, 어느덧 그 언니와의 관계는 아이친구엄마만의 인연의 범주에서 벗어났다. 상대를 변화시키는 사람. 서로의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소중한 인연. 그리고 그런 언니의 손에 끼워진 묵주반지. 나도 가야 되는데,라는 생각이 참 오랜만에도 들었다.


어느 날은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신랑이 갑작스럽게 모세에 대한 다큐를 보자 했다.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나와 해설해 주는 모세 실사 드라마라니. 그런데 그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먼저 모세. 각 분야의 학자들이 사료들을 바탕으로 서술하는 모세는 최근말로 하자면 사실상 분노조절장애에 가까웠다. 하느님이 그렇게 오랜 시간 지켜보고 선택한 사람,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이 중 하나인 모세인데 그는 '완벽한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끊임없이 좌절하고 의심하고 분노하는 인간. 자신감도 없어 남들 앞에 나서는 것조차 꺼리는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 그 자체였다. 게다가 그가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온 소위 '선택받은 민족'인 히브리인들은 또 어떤가. 조그만 시련에도 노예로 안주하기를 원하며 틈만 나면 이기적이고, 심지어 모세가 없는 틈에는 금송아지라도 만들어 숭배하려는 어리석은 인간들로 가득한 무리였다. 그리고 그들을 선택한 하느님조차도 그들에게 무한정 달콤한 사랑만 주신 것은 아니었다. 모세에게, 그리고 당신이 선택한 민족이 준비될 때까지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게도, 그리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이집트인들에게 더없이 잔인한 모습도 보이신다. 열 가지 재앙. 그 생생함이 아직도 선명하다.


생각 없이 보게 된 다큐멘터리건만 그렇게 이 다큐는 모세를, 그리고 성경을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결혼의 조건이라 간신히 세례만 받은 신랑도 어느새 모세를 비롯한 성경 속 인물, 그리고 그분에 대해 좀 더 알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게 되었고 나 또한 조금 용기를 내어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마음먹었다가도 포기하기가 일쑤인 나약한 나도, 8년을 냉담한 나도 오랜만에 성당에 나가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그 와중에 때마침 아이는 첫 영성체를 앞둔 나이이고, 한 해 빨리 태어난 아이의 사촌 누나가 아이에게 첫 영성체를 하고 받은 각종 성물들을 아이에게 잔뜩 자랑해둔 바, 이렇게 우리 가족은 거짓말처럼 모두 다시 성당에 갈 준비가 되었다.


고해성사중에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당신이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분이 선택한 것이라고. 그분의 선택이라면 더욱더 기꺼운 마음으로. 오랜만에 주말 스케줄에 성당을 넣어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더 좋은 해석이 존재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