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평론가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는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기분을 떠올려 본다. 무언가 굉장히 놀랍고, 감탄해서, 아연하고, 불편하고, 짜증이 났던 것 같다. 그러니까 충격을 받은 것인데 무언가 마뜩잖은 감정이 함께 온 것이다. 그 불편함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뭐랄까.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였을까.
평론을 처음 접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텍스트와 서사, 이미지를 해체 수준으로 분해하고 의미를 발골해 내는 그들의 작업이 얼마나 섬세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심지어 섬세를 넘어 너무도 논리적이기까지 한 신형철의 글에 나는 일변 '질렸'었던 것 같다. 그 굉장함을 소화시키는 일은 한켠 너무 부담스럽기도 해서, 그리고 같은 텍스트를 이렇게 읽어낼 수 있는 그의 능력에 경의와 범접할 수 없는 경외를 담아, 짜증이 슬며시 나기도 했단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을 한 번에 두 편 이상 읽지 못했다. 아이구야. 한 편도 소화가 어려운데, 아무리 내려놓아야 두 편을 간신히 읽었다. 그리고는 한참, 평론가의 세계와 글들 과는 멀어졌다.
내가 얼마나 평론에 대해 망각하고 있었는지, 나는 무려 '평론 수업'에 앉아서 깨달았다. 지역에서 하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고, 때마침 글쓰기에 무료함을 느끼던 나는 그저 생각 없이 신청을 했다. 좀 다른 글을 써볼 수 있으면 좋겠다 정도의 안이한 감각으로. 다른 스케줄에 밀려 고작 4회 수업의 첫 수업도 빼먹고 두 번째 수업에 앉아서야 나는 신형철의 글을 처음 읽던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평론 참 쉽죠'를 연발하면서도 평론에 대한 열렬한 자부심과 사랑이 느껴지는 평론가의 두 시간 강의는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뜨거움이 있었다. 좀 세게 말하자면 들어올 테면 들어와 봐 수준의 선언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텍스트를 '읽어내는'데는 적확한 지점이 있고,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비로소 더 나은 해석을 해낼 수 있다는 점. 정답은 없지만 더 좋은 해석이, 그래서 가장 좋은 해석이 분명 존재하기에 그것을 해 낼 수 있겠냐는 도전적인 물음과 해내고자 하는 의지, 해내는 희열 등등. 평론 참 쉽죠 뒤에는 그러한 뜨거움들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온 책장을 샅샅이, 세 번쯤 둘러보고야 책장 한켠에 꽂혀있던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 책을 찾아냈다. 새책마냥 꽂혀있던 책의 표지를 다시 한번 열어본다. 그리고 이제, 신형철을 흠모하는 또 다른 현실의 평론가를 만남으로써 조금은 덜 낯설어진 그의 글을 다시 마주해 본다. 여전히 흘러나오는 탄성. 당분간은 아등바등 이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기 위한 적확한 지점을 찾는 노력이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