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배짱 있게

무리에서 걸어나오기

by Decenter

카페에 혼자 앉았다.


나름 큰 결심이었다. 무리를 이탈하여 혼자 있겠다는 결심. 10명이 함께 듣는 그룹 수업에 아이를 넣고 나면 으레, 10명의 엄마들은 카페에 모인다. 한 달에 한 번. 두 시간 여 가량 엄마들의 수다 시간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과감히, 엄마들이 있는 카페에 가기보다 혼자 다른 카페에 가는 것을 선택했다.


지역에 인적 네트워크가 전혀 없던 내가 엄마들 무리에 함께하게 된 지는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 사람을 가리지 않는 밝은 엄마가 초대해 준 덕에 그룹으로 수업하는 학원에 아이를 같이 보내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이 그룹은 학원만 같이 보내는 것이 아니라 주말에도 종종 만나 아이들과 키즈카페, 갯벌, 워터파크 등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익숙했고, 덩달아 나도 처음으로 아이를 아이 친구 무리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에 데려가게 되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좋았다. 낯선 지역에서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우다 보니 한 번도 가족이 아닌 멤버와 어딜 가본 적이 없었으니, 가슴 한편 자리한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은 해소되는 듯했다. 나 또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모습을 관찰하게 되는 수확이 있었으니. 내 아이가 생각보다 유별난 건 아니었구나, 내 아이가 친구들과 놀 때는 이런 모습이구나, 다른 엄마들은 이런 상황에 아이를 이렇게 대하는구나 등등. 특히 엄마들 마다 다양한 아이를 훈육하는 방식을 보는 것은 나의 육아 태도를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나의 '엄마 사회생활'은 점점 가시밭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나다. 나는 결국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을 포기했다. 고정 멤버로 나 말고 보통 다섯 명의 엄마들은 당연히 다들 제각각이다. 그 제각각은 흥미진진하기도 했지만 더불어 함께 있을 때 많은 에너지를 쓰게 했다. 편안하지 않음. 무언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헛헛하고, 늘 말로 무언가를 해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내가 그 무리만 갔다 오면 수다 시간이 몇 시간이었든 오히려 꽉 막힌 기분이 들었다. 왜일까. 나는 일하고 나머지는 전업 이어서? 아니다. 어차피 일이야기를 해야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단 한 명. 그 무리 중 한 명과 있을 때는 편안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 한 명과 일대일로 있을 때 일 뿐, 여러 명의 무리에서 나는 늘 어딘가 어색하고, 무엇인가 불편했다.


이렇게 인정해 버리기가 두려웠다. 한 번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더는 함께하기 힘들 것 같아서. 그래서 애써,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나의 선택은 오늘과 같다. 굳이 굳이 노트북 가방을 챙겨 들고, 모두가 향하는 카페를 뒤로 한 채 조용히 다른 카페에 앉아있는 나. 관계가 가장 중요한 나인데,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나 보다. 아니, 오히려 관계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진심을 다 할 수 없는 관계를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는지도.


버텨내지 못했다는 씁쓸함이, 어쩌면 아이는 행복했을지 모르는 무리에서 자청해서 걸어 나오는 엄마로서 아이에게 미안함이, 하지만 한편 한 명의 인연이라도 만난 게 어디냐는 기쁨이, 그렇지만 앞으로 어떻게 점차 이 무리와의 관계를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까지, 오만 감정이 뒤섞인다. 하지만 이래도 저래도 어쩌랴. 오늘 읽은 자기 위로형 문장을 다시 되뇌어 본다.


"당신 인생은 당신을 위해 있다.


남의 시선이나 생각에 얽매이지 말고,

보다 큰 마음으로,

보다 배짱 있게 살아가라.


당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리석어서, 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