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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Dec 01. 2022

"엄마. 호박죽 끓이기가 취미에요?"

그립다(애틋하게 보고 싶거나 가까이 대하고 싶다.)

"엄마. 요즘 취미를 만드신다더니 호박죽 끓이기가 취미에요?"

따뜻한 온기와 구수한 냄새로 가득한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아들이 물어본다.

“어. 엄마 취미생활이야. 어때? 맛있는 호박죽도 먹고 좋은 취미생활이지?” 

 그럴만도 한게 요즘들어 일주에 2번은 호박죽을 끓이고 있다. 하나는 팥 넣은 어른용, 다른 하나는 팥을 넣지 않은 아이들용.

    



“여보. 이게 다 뭐야?”

파란색 비닐봉지 두개.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본다.

“이걸 어찌 들고 왔어?”

“어머님이 주신거야?”

쉴틈없이 질문이 쏟아진다. 아무리 살펴봐도 호박인지 박인지.

비닐봉투를 열어 확인해보니 호박이다. 

맷돌호박처럼 울퉁불퉁한 호박이 아닌 매끄럽고 얼굴만한 크기의 호박.

박이 아닌게 어딘가 싶다가도 이 많은 호박을 어쩌지 걱정이 앞선다.     



“어머니, 늙은호박 있어요.?

”올해는 이상하게 늙은 호박이 안보인다.“

”그래요. 그럼 따시면 몇 개만 보내주세요. 호박죽 끓여 먹게요.“

며느리 말을 기억하시고 이렇게 많이 보내셨다.     




우리 어머님은 내가 존경하는 분이다.

시집온지 17년이지만 한결같으시고 내가 부족한 부분도 뭐라 탓하신 적이 없다.

말씀을 아끼시는 분이다. 

올해 따뜻한 봄날. 

아버님은 3개월 병원생활을 하시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갑자기 떠나신 아버님의 빈자리가 크지만 어머님은 흐트러짐 없이 단단하고 묵직한 담벼락처럼 집안을 지키고 계신다. 어머님 혼자 농사를 하실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우리 어머님은 전혀 문제없이 평년처럼 농작물을 심으시고 가꾸셨다.

거기에 하늘에 계신 아버님의 보살핌이 있으셨는지 모든 농작물이 풍작을 이뤘다.

고추는 따도따도 또 열리고, 콩은 어찌나 잘됐는지 신랑은 며칠을 가서 어머님을 도와야했다. 거기에 한달 전까지만 해도 잘 안보였던 늙은 호박도 이리 많이 보내주시고.

진정한 프로 농사꾼이시다.      




어머님이 주신 호박을 보고 있자니 이 많은걸 어쩌나 싶다가도 그래 두고두고 먹으면 되겠지 긍정적 마인드로 베란다에 차곡차곡 쌓았다. 어쩜 하나같이 매끄럽고 아담하게 예쁜지. 한 개를 번쩍 들어 부엌으로 향했다. 갑자기 뭔가 확인하고 싶었다. 이렇게 겉모습이 예쁜데 속은 얼마나 예쁘게 생겼을지.

칼을 뽑아 들고 우선 심호흡을 했다. 과연 오늘은 남편 도움없이 호박을 반으로 자를 수 있을까? 온 우주의 힘을 오른쪽 팔에 모으고 호박에 칼을 넣는 순간. 어. 생각보다 잘들어 가네. 

쫘~악 시원하면서도 호박 특유의 향긋한 향이 코를 자극하고 주황색 속살이 들어나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걸로 호박죽을 끓이면 얼마나 맛있을까? 생각만해도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호박을 손질해서 자르고, 팥은 씻어서 압력밥솥에 호박과 같이 안치고, 그 사이 찹쌀을 씻어 담가 놓았다. 어느새 치~이 김빠지는 소리와 호박 익는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밥솥을 열어보니 알맞게 익어 있었다. 냄비에 옮겨 불을 켜고 찹쌀을 갈아 넣고 소금반스푼 설탕 한스푼을 넣고 주걱으로 휙휙 저으면 맛있는 호박죽이 완성되었다.     


늙은 호박죽으로 끓인 호박죽은 그 만의 매력이 있다. 특히 팥을 넣어 끓이면 그 맛은 배가 된다. 호박의 달콤함과 팥의 구수함 그 둘의 조합은 호박죽과 팥죽의 중간사이. 어른들 말씀중에 나이가 들수록 엊그제 일은 생각이 잘안나도 옛날 생각은 더 또렷해진다더니 역시 어른들 말씀은 틀린게없다. 40대 중반이 되어가니 자꾸 어렸을 때 먹었던 맛이 그립고 지금도 그 맛이 생각난다. 더 또렷하게. 

엄마는 늦가을과 겨울사이 이맘때쯤 호박죽을 자주 끓이셨다. 어렸을 때 죽은 싫어했지만 유일하게 좋아했던게 호박죽이다. 엄마가 호박죽을 한그릇 떠주시면 맛있게 먹었던 그날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날의 엄마의 목소리, 표정, 내 기억 속의 그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리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고 그립고 보고 싶다. 그래서 자꾸 호박죽이 끓이고 싶다.      




“언니. 나 호박죽 끓였어. 퇴근하고 우리집 들러.”

“오우 또 끓였어? 너 호박죽 끓이는게 취미야? 안그래도 지난주에 먹었는데 또 먹고 싶은거 있지. 자꾸 생각나.”

“어. 당분간 취미생활이 될 것 같아. 어때? 좋지?

언니도 그리운가보다. 엄마의 맛. 엄마의 따뜻함. 엄마의 사랑이..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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