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의 유동성 위기의 원인은 10년 전 중국투자 실패에 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외국에서 한달, 일년, 이년 살기를 한다. 아이 방학을 맞아 외국 학교에서 캠프를 시키거나, 국내 기업의 세계화에 발 맞추어 주재원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들도 해외 연수를 일 년 이상 나가고 그 기회를 삼아 아이 영어 교육을 제대로 시키고 오기도 한다.
아예 영어권 국가인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직업을 구해 이민을 간 사례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나와 직장을 잡았다 가도 국내 기업의 문화에 염증을 느끼고 해외에 나가서 다시 학부를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새로운 직업을 찾은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들 이야기를 하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막연한 부러움을 느낀다. 나 역시 그렇지 못한 경우이다. 하지만 나는 해외에 나가서 사는 것이 싫다.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어서도 아니고 영어가 불편해서도 아니다. 대학생 시절 해외에서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했던 경험 때문아이다.
캘리포니아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중 투자은행에서 인턴 자리를 잡았다. 워싱턴 D.C.에 있던 투자은행에서 돈 대신 학점을 받는 학생 인턴을 했고, 그 곳의 보스가 나를 캘리포니아 지점에 추천해 주어 돈을 받고 인턴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기숙사에서 직장까지 걸어가기는 힘들었고, 버스를 타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같이 기숙사에 살던 미국인 친구들은 나를 걱정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버스는 노숙자나 흑인 혹은 멕시칸들이 타고 다니는데 그러다 보면 범죄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워낙 땅이 커서 그런지 운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중고차라도 사서 각자 몰고 다니기 때문에 버스를 타는 일이 없다고 했다. 멕시칸이나 흑인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버스는 위험한 교통수단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가 없었다. 운전도 무서웠고 차량을 사거나 빌리는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새로운 나의 보스 역시 워싱턴 D.C.와 마찬가지로 멕시코계 미국인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내가 할 일을 알려주었다. 미국에서 연금제도가 변해 자산관리전략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으니, 나에게 전화로 고객들을 초청하라는 것이었다. 나를 전화기 한 대가 놓인 작은 방으로 안내하고는 전화번호가 적힌 두꺼운 A4용지와 대본을 주면서 하루 종일 전화를 돌리라고 했다. 전화를 돌리는데 거의 대부분 전화를 받지 않았고,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내 말을 듣지 않고 금방 끊었다. 몇몇은 욕을 하기도 했다. 그 때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영어로는 “Cold Call”이라는 일이라고 했다. "Cold Call"은 미지의 가망고객에게 전화를 하는 영업방식이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에서 콜센터 직원이 하는 일을 미국의 자산관리 회사에서 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알아주는 명문대학교 학생인데, 미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콜센터 일이라는 것에 씁쓸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미국 금융권의 벽을 뚫고 싶었다.
미국 투자회사에서는 일한 대가를 받으려면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것을 미국에서 받아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을 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복잡한 서류를 힘들게 준비하고 버스를 어렵게 갈아타고 관공서에 가서 몇 시간을 대기했다. 그렇게 공무원을 만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번호를 줄 수가 없다고 했다. 아마도 학생 비자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면 투자은행에서도 내가 학생 비자라서 급여를 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일을 시켰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미국은 돈을 쓰는 유학생에게는 친절하지만,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차가웠다. 나는 인턴을 하면서 학력을 더 높여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MBA 진학에 필요한 시험인 GMAT 학원을 미국에서 다니기 시작했다.
돈이 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선망하는 직장에 들어가서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고 분위기를 느끼고 비즈니스 영어를 배운 것은 앞으로 돈을 벌기 위한 무형자산을 쌓은 것이었다. 인턴 경험은 이력서의 한 줄로 들어갔고 나의 이력서를 받아 든 사람들은 미국에서 일을 했다는 자체를 높이 평가해 주었다. 이것은 다른 친구들로부터 나를 다르게 보이기 하는데 크게 도움을 준 것이다.
외국인으로서 돈을 벌기 어려운 것은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2024년 말 롯데그룹 사장단이 대거 교체되고, 유동성 위기가 보도되고 있다. 신사업 투자에 실패한 재벌 3세가 승진을 했다는 것에 대한 비난의 여론도 거세다. 지금의 위기가 10년 전 중국 투자 실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사실 롯데는 일본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신격호 회장이 광복 전 일본에 롯데를 설립하였고, 지금도 롯데의 최대주주는 광운사라는 일본회사이다. 우리가 롯데백화점에서 소비하고 롯데가 남긴 수익은 배당을 통해 일본에 있는 광운사로 들어간다.
또, 롯데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회사는 아니다. 껌을 만드는 회사로 시작한 롯데는 우리나라의 부동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 유통을 하기 위해서는 곳곳에 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땅을 기반으로 마트, 백화점, 홈쇼핑 등 유통업을 하고 있다. 5일마다 장이 서고 말을 타고 짚신을 신고 이동하던 시절, 유통업은 수익을 많이 내는 사업이었다.
자동차의 개발과 보편화로 이동이 자유로워진 후에도 여전히 유통업은 괜찮은 사업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의 발달로 유통업의 마진은 크게 줄었다. 마진은 매출과 비용의 차이를 말한다. 땅이 없어도 온라인으로 쇼핑몰을 열고 물건을 사고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스템의 발달은 유통업이 더 이상 부가가치를 내는 사업이 아니게 만들었다. 부가가치는 생산 과정에서 새로 덧붙인 가치를 말한다. 그래서 과거 유통업만을 하던 "상사"업체들이 자원개발이라는 사업을 추가해서 사업을 다각화하였다. ‘상사’란 무역이나 상업적인 활동을 위하여 조직된 상업상의 결사로, 무역상 조합, 통상 회사, 거래소 따위가 있다.
롯데그룹도 사업다각화를 했다. 사업다각화란 한 기업이 사업 영역을 여러 분야로 넓히는 일이다. 기존 사업과 관련 있는 분야로 진출하는 경우와 기존 사업 영역과 전혀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경우가 있다. 롯데는 기존 사업과 전혀 다른 분야인 석유화학으로 진출해 성공했다. 금호석유화학이라는 회사를 인수했고, 이를 현재의 롯데케미칼로 키웠다. 화학회사는 석유를 사서 화학제품을 만든다. 우리나라에는 울산, 대산, 여수에 대규모 석유화학단지들이 있다. 석유를 사서 끓이면 나프타라고 불리는 것이 나오는데, 이걸 또 끓이면 에틸렌, 프로필렌 등이 되고, 이걸 또 가공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 비닐 그리고 옷에 들어가는 합성섬유 등이 된다.
그런데 지속가능성, 친환경이 중요하게 되면서 화학제품에 대한 소비가 줄어 들었다. 사실 여전히 사람들은 비닐을 쓰고 옷을 사 입는데 이러한 설명이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보다 큰 흐름으로는 수입과 수출이 용이하지 않은 지역을 제외하고는 물건이 넘쳐나게 되었다. 경기침체라는 것, 소비가 줄었다고 흔히 말하는 것은 사실 소비가 늘어나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말한다.
소비의 흐름에 더해 공급 쪽에서의 변화도 있었다. 우리나라 보다 조금 늦게 자유무역을 시작한 중국이 대거 화학 공장을 지어 물건을 생산하고 있다. 중국 내에서도 소비 증가 속도가 느려지자 화학제품이 그 나라 안에서 소비가 되고도 남아서 이를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화학업계 마저 이익을 남기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롯데케미칼 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사인 LG그룹이나 SK그룹 내의 화학 회사들도 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롯데의 유동성에 문제를 일으킨 이유는, 다른 회사들은 화학의 부진을 채워줄 다른 사업이 있는데, 롯데는 그것이 없다는 것이다. 유동성은 기업의 자산이나 채권을 손실 없이 현금화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LG는 배터리 그리고 SK는 정유사업이 있다.
롯데는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고 예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LG나 SK처럼 다른 사업으로 돈을 벌 궁리를 했다. 롯데마트 등을 통해 중국에 진출했던 것이 바로 그 전략이었다. 하지만, 외국에서 돈을 벌기란 정말 어렵다. 2015년 사드사태가 터졌다. 사드는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로,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체계의 핵심요소 중 하나이다. 이러한 사드는 중단거리 탄도미사일로부터 군 병력과 장비, 인구밀집지역, 핵심시설 등을 방어하는데 사용된다. 미국은 우리나라 정부에 사드를 배치할 것을 요청했고, 우리나라 정부는 롯데가 가진 땅에 배치할 것을 롯데에 요청했다. 롯데가 사드 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는 땅을 우리나라정부에 제공하자, 이에 대해서 중국정부는 롯데에 보복조치를 했다. 중국 정부는 롯데마트에 대해서 영업을 정지하도록 명령하고, 롯데슈퍼에 벌금을 매기고, 롯데그룹 수출품의 통관을 지연시키거나 통관을 허락하지 않는 등 사업을 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정부가 롯데가 가진 땅을 요청했으니 롯데의 잘 못이라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중국은 대한민국정부를 대상으로 보복을 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자국에 진출한 사기업을 대상으로 조치를 취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외교 문제로 만들지 않고 중국에서 돈을 벌려는 기업을 대상으로 보복을 하는 것이 중국입장에서 편리했을 것이다. 이렇게 외국에서 일을 하다 보면 나의 상식이 그들의 상식이 아니다. 결국 롯데는 막대한 손실을 보고 사업을 정리해야 했다.
지겹도록 들어온 “헬조선”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도 외국에서 돈을 버는 것은 더 어렵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그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도 거의 없다. 껌이라면 롯데 롯데 껌~ 껌을 만들어 팔다 과자도 팔고 화학제품까지 팔게 된 이 회사가 앞으로 어떠한 행보를 보일지 궁금하다. 부동산도 자회사도 팔려고 내놓았지만 경기가 침체된 이 상황에서 누가 선뜻 사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해외에서 힘들게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한 경험으로 내 자신의 경쟁력을 더 높이기 위해 애썼던 나와 중국에서의 실패 이후 유동성 위기를 맞이하게 된 롯데.
기업이 해외 진출을 한다는 기사는 주로 주식 시장에서 호재로 작용을 한다. 해외 진출로 인해서 직원들이 주재원을 가서 자녀들의 영어 교육을 잘 시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진출이 기업에 돈을 벌어 줄지는 다른 문제이다. 과연 그 기업이 해외에 나가서 돈을 벌 확률은 얼마나 반드시 따져 볼 일이다. 따져 볼 때는 그 나라의 규제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그 곳에 투자 비용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관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