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생각하며 입사하는 직장인의 태도
1990년 대, 수도권 명문 고등학교의 한 교실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미묘하게 고개를 떨며 말을 하던 국어 담임 선생님이 한 학생을 호명했다.
“김은영”
“네”
김은영은 어리 둥절 해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래희망을 적어서 내라고 했는데, 40세까지는 약사, 그 이후에는 화가라니 이게 무엇이지?”
담임 선생님의 싸늘한 음성에 교실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김은영은 반에서 10등 안에 드는 우수한 성적에도, 멋스러운 숏 컷을 하고 교복도 날 티가 나지는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세련되게 입는 친구였다. 반에서 10등 정도의 성적이면 약대를 충분히 가는 명문 고등학교였다.
김은영은 자리에서 일어난 채 눈알을 굴리며 입을 오밀조밀 모아가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약사가 되어 돈을 충분히 벌면, 제 꿈인 화가로 살고 싶어요.”
“약사면 약사고, 화가면 화가지 다시 적어 내!”
무미건조한 선생님의 말로 그날의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그 시절 나는 속으로, ‘직업은 한 번 정해지면 바뀔 수 없는 것인가? 선생님이 너무 심한 것 같다. 직업을 두 가지 가질 수 있는 것인데. 은영이 생각이 참 기발한 걸!’ 생각했다.
얼마 전 ‘나는 솔로’에 약사면서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만화를 그리고 소품을 만들어 파는 90년대 여성 출연자가 나왔다. 나와 은영이보다 10살쯤 어린 여성 출연자를 보며 저 친구는 은영이의 꿈을 이루었네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은영이와 졸업 후 연락을 한 적이 없어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알지 못한다. 은영이는 분명 시대를 앞서가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약사를 하면서도 본인의 재능인 미술을 계속 해 제2의 인생을 미리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다. 죄송하지만 그 시절 국어 선생님이 지금은 틀렸다. 우리는 입사를 하면서 퇴사를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월급으로 집을 사는 일이 불가능 해졌고, 대기업은 공채를 없애거나 크게 줄였다. 기업도 살아남기 힘들어 인력을 줄이고 해외의 싼 인력이 있는 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어, 한 번 들어간 직장에서 정년까지 살아남는 것도 너무나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한국 사회에 풀리는 것은 부동산 가격을 보면 알 수 있다. 2014년 과천 아파트 국민평형의 가격이 8억원이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18억원이 되었다. 과천의 집값이 두 배가 넘게 올랐다며 놀라워할 일이 아니다. 같은 기간 대치동의 브랜드 아파트는 10억원에서 32억원으로 올랐다. 그렇다고 단순히 2억원을 더 빌려서라도 대치동의 집을 샀더라면 내가 훨씬 잘 살았을텐데 하고 부러워할 일도 아니다. 신혼집을 구하러 다니던 10년 전에는 천만원으로도 전세집의 수준이 크게 달라졌고, 2억원은 많이 큰 돈이었다. 그만큼을 더 빌리면 원리금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놀랍게도, 10년 전 2억원의 차이는 지금의 14억원의 차이인 것이다. 10년 동안 한국 사회에는 돈이 그렇게 많이 풀린 것이다. 그렇게 많은 돈은 기업을 통해서 들어오고 나갔다.
그렇게 많은 돈이 도는데 나에게 떨어지는 것은 없다. 덮어 놓고 출근하고 투자하고 해도 만족할 수가 없다. 대체,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10여년 전 그 제목의 책이 나왔다. 그 책의 저자인 케인즈 연구학자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얼마가 있어야 충분한가’라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답을 찾고자 했다. 현대 사회는 무한 경쟁을 통해 끊임없이 일하고 맹목적으로 소비를 하도록 만드는 구조로 디자인되어 있다. 나는 이 속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관점을 키우고 현명하게 커리어를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노력 끝에 기업에 들어오지만 기업은 냉혹한 곳이다. 회사를 인연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밖에서 만났다면 좋았을지 몰라도, 그 안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를 할퀴어 대지 않을 수 없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처럼, 직장은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곳이 아니다. 명문고와 명문대에 나온 사람들이 모여서 다시 경쟁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일수록 유리한 곳이다. 남자들에게 쉽다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나, 여성에게는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이고, 학교와 달리 아무리 잘해도 칭찬을 해주는 사람은 없다. 직장인이 받을 수 있는 칭찬은 월급이다.
무엇보다 개인을 힘들게 하는 점은 모호한 기준이다. 성과에 대한 기준과 업무의 범위가 대게 애매하다. 회사는 핵심성과지표라는 것을 만들어 매년 직장인들에게 적어내게 하거나 위에서 내려준다. 하지만 그 지표가 서로 상충되거나, 터무니없이 높거나, 너무나 많다. 한 마디로 지킬 수 없는 것이다. 일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것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열심히 할수록 남의 일까지 떠 맡는 결과를 초래한다.
수많은 기업을 분석해 온 기업분석가인 내가 내린 결론은, 기업이란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너의 일과 나의 일이 분명할 수가 없고, 잘한다는 것의 기준이 명확할 수가 없다. 한 두 가지의 평가지표만을 주어 직원들을 통솔할 수 없는 것은 기업을 둘러싼 환경들이 너무나 많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전쟁통에 살고 있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이 된 기업이라면 기업의 주가를 높이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잘하는 일이다. 하지만, 애초에 주가를 변동시키는 요소들은 너무나 많다.
그렇다고 종업원인 개인에게 급여를 많이 줄 수가 없다. 기업의 비용이 급여이기 때문이다. 높은 급여를 줄수록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떨어진다.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 우수한 인력이 기업에 들어오거나 남는다는 말도 맞지만, 근본적으로 기업은 비용을 아껴야 한다. 왜냐하면 기업은 인간과 달리 수명이 유한하지가 않다.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가정 속에 설립되는 것이 기업이다. 혈액이 돌아야 사는 사람처럼 기업은 돈이 돌아야 살 수가 있다.
회사는 종업원에게 칭찬을 해주어야 할 의무가 없다. 종업원끼리 서로 칭찬하는 문화가 있는 기업에 속해 있다면 운이 좋거나 그런 기업에 들어올 만큼 능력이 좋은 것이다. 회사와 종업원은 분명한 계약관계에 있으며, 일한 대가를 주는 것이 회사의 의무이고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이 직원의 의무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원인 내가 한 일에 대해서 회사가 인정을 해주지 않아서 속상하고 일할 의욕이 떨어질 필요가 없다.
회사의 사수나 선배들 역시 회사와 계약관계에 있는 하나의 자연인으로 보면 대하기가 편하다. 우리는 회사가 선발해 주어 우리의 기술을 회사를 위해 사용하고 있고 그러는 과정에서 서로를 괴롭힐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의 인정이나 급여의 상승은 오면 좋은 것이지만 오지 않아도 괜찮다. 하나의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이 오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일이 없으면 기업은 생존할 수 없고, 그것은 직장생활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업의 생리를 알아도, 우리는 감정이 있는 사람이고, 병들 수 있는 육체가 있고, 수명이 유한한 자연인이다. 하지만 영원히 살고, 이윤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기업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맹목적으로 벌고 쓰는 생활에 스며들어 버린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쓰는 것에 익숙해지면, 경제적 자유를 멀어지게 한다.
‘출근하기 싫다’를 외치면 외칠수록 우울해지고 거기서 나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 돈을 쓰게 된다. 술을 마시거나 쇼핑을 하거나 머리를 하거나 여행을 가거나 게임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돈을 쓸 곳은 무궁무진하다. 그렇게 우리가 쓰는 돈은 또 다른 기업의 이윤이 되고 우리 사회를 돌아가게 해준다. 돈을 버니까 집안일과 육아를 대신해 줄 아주머니를 쓰고, 외식을 하고, 해외 여행을 간다. 그러나 일상을 영위하는데 돈을 많이 들일수록 경제적 자유는 멀어져만 간다. 소비가 늘어서도 맞고, 생활비가 커진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힘겹게 들어온 직장 그리고 본업에서 도피하는 것으로 기분을 다스리다 보면, 경제적 자유는 요원해진다.
퇴사를 생각하며 입사를 하는 요즘의 직장인은 일차적으로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직장을 다니는 기간과 퇴사 이후의 삶의 갭을 줄여야 한다. 직장을 다니는 중에는 입사할 때 가지고 있던 자신의 핵심역량을 개발하고 퇴사 이후에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직장을 다니건 다니지 않건 자긍심이 생긴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 동안 시간을 보내기 위해 큰 돈을 들이는 일도 줄일 수 있다.
개인을 기업이라고 가정해 보면 젊은 시절 낮 시간은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이다. 그 시간을 회사에서 일을 하며, 우리는 경제적인 관점을 키우고, 경제적 자유를 찾는 시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기업을 나와서도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핵심역량이라고 부른다.
핵심 역량이란 기업의 구성원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 지식 등이 종합된 총체적인 능력으로, 기업 내에 누적되어 기업에 경쟁 우위를 가져다준다. 기업분석에서 쓰이는 핵심 역량이라는 단어는 어디에나 적용이 가능한 개념이다. 대학이 학생들을 선발할 때에도, 기업이 직원을 채용할 때에도 사용한다. 내가 가진 기술이 기업의 경쟁 우위를 줄 뿐 아니라, 은퇴 이후에도 나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직장 생활이 즐거울 것이며, 그러한 즐거움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의 지불을 줄여줄 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직업에서 이런 핵심역량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직업을 가져도 핵심역량은 동료와 다를 수 있다.
돈을 벌 수 있는 역량을 쌓는 것은 나를 아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 아이들도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면 좋고, 처음 직장을 잡았을 때부터 할 수 있다. 학교를 다니면서 학원을 다니면서 어느 것이 재미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다. 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일을 할 때도 주가를 맞추는 것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기업을 알아가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나의 경우, 핵심역량은 무언가를 분석하는 능력이다. 이를 계속 직장에서 개발한다고 생각하면, 직장생활이 덜 괴로워진다. 경영대학원을 마치고 다음 직장을 잡으면서 S그룹의 인수합병자리와 일본계 은행 크레딧 애널리스트 자리에 동시에 합격을 했다. 그 때 국내 대기업으로 갈 생각을 했었지만, 결국 크레딧 애널리스트를 선택한 것은 나의 핵심역량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받은 여러 사교육 중에서도 ‘책읽고 글쓰기’를 좋아했다. 지금도 갭이어를 보내면서 글쓰기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글쓰기를 통해서 나를 알고 좋은 생각과 습관을 만들어 나가고 본업을 충실히 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다.
같은 직업에서도 각자 좋아하는 부분이 다를 수 있다. 사회초년생부터도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어느 부분을 내가 좋아하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다. 직장에서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도 해야 하고 내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를 수 있지만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 직장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루에 8시간을 근무한다면 그 중에 단 10분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 핵심역량을 개발하는 쪽으로 사용했다면, 그것으로 사실 충분한 것이다. 막상 직장에서 나와서 생활해 보면 생활에 치여 단 5분도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회사를 나만의 학교로 만들어 본업을 하면서 나의 핵심역량을 찾고 그것을 키워 나가 보도록 하자.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서 오늘의 지금을 맞이한다. 그런데 막상 현재를 맞이하면 거기서 수반되는 많은 괴로움들이 따른다. 직장에 들어왔을 때 들어오려고 했던 이유를 생각하고, 내가 잘하는 것을 남이 인정해 주는가 여부와 관계없이 유지할 수 있는 핵심역량을 계속 개발하고, 퇴사 이후에도 그 일을 계속 해 나가는 것이 경제적 자유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직을 할 때도 나의 핵심역량에 맞게 이직을 하면 된다. 블로그를 하더라도 나의 핵심역량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하면 된다.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