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홈스가 될뻔한 여자

by 지니

“불가능한 것을 제외하고 남는 것, 그것이 아무리 있을 법하지 않아 보여도, 그것은 진실이다”

-코난 도일 셜록홈스 중-



<셜록홈스>

그들을 만난 것은 24년 전 일이다.

나는 임신과 함께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육아를 하다가 옆집과 동네의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가르치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옆집의 아주머니가 ‘새댁’ 하면서 말을 붙이고 그러다 친해졌고, 친해지다 보니 그 집 아이들과 동네 친구들이 놀러 오게 되고, 놀다 보니 부모가 감당하기 힘든 학교 수행평가들을 도와주게 되었고, 그러다 결국 그룹 과외까지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늘다 보니 거실 공간이 점차 좁아지기 시작했다.

이왕 시작한 것 ‘나의 재능도 살리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면 더 좋겠다’ 싶어 근처의 학원을 할 장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자 영업자가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고려할 것은 ‘보증금과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가’이다.

투자가치가 있는지 신중해야 한다.

아무리 아이들과 공부하는 것이 좋아 시작한다 라고는 하지만, 열정만 가지고 무턱대고 학원사업에 뛰어들어갔다가는 쫄딱 망해서 빚까지 지고 뒷감당을 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조금 전 얘기했다시피 나는 신중하게 접근했다.

등기부등본에는 하자가 없는지, 보증금과 월세는 얼마인지, 입지여건과 환경은 어떤지 등등..

하지만 영 맘에 드는 곳이 없었다.

그때 부동산 사장님이 “조금 비싸긴 한데 까다로운 새댁 맘에 드는 게 딱 하나 있긴 해! 한데 좀 넓어!”라고 하셨다.

“보는 데는 돈 드는 것 아니니까 한번 보기라도 해!”하며 나를 끌고 갔다.

지하철 역 바로 옆이라 누구든 이동이 편할 뿐 아니라, 200미터 전방에 교육열이 높다는 초중고가 다 모여 있어 학원 하기 좋은 입지 여건이었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보고 나니 다른 곳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어떻게든 그곳을 계약하고 싶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려준 장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원한 것은 60평 정도였는데 100평으로 나왔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게 문제였다.

간절하게 생각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계획한 60평은 학원으로 운영하고 40평은 전대를 내놓게 되면 운영상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전전세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하면 보증금을 ‘회사 퇴직금으로 일부 감당하고, 나머지 40평은 세를 받으면 되겠다’라는 생각에 계약을 했고, 운이 좋게도 40평마저 며칠 내로 계약이 체결되었다.

계약한 곳은 재개발 조합원 사무실이었다.

돈이 부족한 나는 월세를 시세보다 높게 책정해서 불렀는데 흔쾌히 한 푼도 깍지 않고 계약했다.

왜냐하면 조합원 사무실이지만 실제 계약자는 대기업이었고, 그들에게 40평 월세는 푼돈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만난 얘기의 서두가 좀 길어졌다.

여직원 한 명과 조합장, 부조합장 이렇게 세 명이 근무를 하는 곳이었다.

조합원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의 분위기는 비밀이 많은 듯 음침했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조합장은 160센티도 채 안되어 보이지만 깡이 있다고 해야 하나, 아주 다부져 보이고 입이 거칠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놀랍게도 머리카락 속의 귀. 즉 한쪽 귀가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부조합장이라는 사람은 눈도, 키도 얼굴의 모공도 컸다.

코끝이 아래로 삐죽하게 약간 숙여져 있는 매부리코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마음은 여려 보였다.

총괄적인 일들은 매부리코 부조합장이 담당하는 것 같았는데 가끔 혼이 나는 듯 욕설이 섞인 큰소리도 들려오기도 했다. 이상했던 점은 여직원을 공용 화장실에서 만났을 때, 또 다른 여직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갈 때쯤 학원은 운이 좋게도 잘 되어서 계약을 연장할 뿐만 아니라, 전대한 40평 마저 써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그들은 그 말에 급히 다른 곳을 알아보아 사무실을 이사했고, 나는 클래스 룸을 더 만들어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저녁 12시를 넘겨 새벽까지 수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시끄럽게 전화벨이 울렸다.

“네. 학원입니다”

“아, 원장님. 저 재건축 조합의 부조합장입니다. 저어 다름이 아니라 물건을 놓고 온 게 있어 서요!”

“아 그래요? 그런데 제가 청소했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디에 놓았죠?”

“아. 그게 천장 안에요. 지금 바로 가져가고 싶은데 꼭 좀 부탁드립니다.”하며 목이 메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지금은 너무 늦었고 내일은 주말이고 월요일 날 가져가셔요!” 여자 혼자 있는데 무서워서 문을 잠그고 일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남자가 사무실에 온다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아알겠습 니 다~” 하며 늘어지며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엇이 길래 천장에 놓았을까?’ 황당하면서도 새로운 신입생 관리로 일에 파묻혀 잊고 지냈다.

월요일 일찍부터 부조합장은 와 있었고 사다리를 가지고 천장의 벽지를 칼로 오린 다음 한 박스의 까만 장부와 서류들을 천장에서 꺼내갔다.

한두 달이 지나고 존경하는 선배를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이선배로 말할 것 같으면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모두 패스한 사람이다.

엉덩이에 습진과 종기가 나는데도 죽도록 공부한 노력파에다 인간성 좋은 의리의 대명사이다. 지금은 강남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

“나 요즘 돈 되는 재건축 일 하고 있어!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한 곳이 많아! 재건축 조합의 아파트 한두 채 값 이상의 비리는 아무것도 아니고...”

“내 머리 보이지? 더 하얘진 거!”

나는 웃으며 “유전이에요!”라고 말했지만 선배의 머리는 지난번 만났을 때 보다, 갓 지은 햅쌀 밥알처럼 하얀 꽃이 한가득 피어 있었다.

“총회 의결 없이 공사비나 업체에 밀감 몰아주기를 하는가 하면, 세대당 1억 이상의 부담금이 생기는 것 같은데, 정말 어마 어마한 돈인데 증거를 확보하는 게 참 복잡하네!”

“이사회에서 선정된 업체를 조합장이 총회 의결 없이 건설업체를 변경해버리는가 하면, *하수암거 있지? 업체 변경이나 설계변경에 관한 안건도 총회의 승인절차 없이 진행된 것 같더라고!”

“증액된 공사비 도급 계약을 시공사 측과 소수 인원들로 구성해 밀실에서 진행했다는 제보도 있고... 계약된 잔금도 맘대로 변경하고. 아무튼 투명한 회계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애를 먹고 있어! 이 쪽 일은 알면 알수록, 캐면 캘수록 유착과 뒷돈과 실속 챙기기의 정점을 찍지!

선배의 말을 듣는 그 순간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동승한, 내 앞에 서 있는 조합장의 수많은 옆모습 얼굴.

칼자국 난 한쪽 귀가 머리카락 사이로 보였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온 이삿짐센터 박스 안에 담긴 검은색 장부와 서류들이 한꺼번에 내 머리 위에 쏟아졌다.

그리고 아쉽게 흘려보낸 새벽의 이틀 밤.

나는 그 이틀 밤을 되돌리고 싶었다.


지금 나는 남편과 재건축된 1400세대의 문제의 새로운 아파트 앞을 지나간다. 동 간 거리가 조금 좁지만 남향으로 배치된 기다란 막대 같은 고층 아파트들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상가 앞에 자리 잡은 부동산 가게 앞에는 빨간색 글씨로 ‘28층 급매 14억 전망 좋음’이라고 쓰여있다.

그 이틀 전날 밤. 부조합장의 전화를 받고 나의 일이 아닌 다른 사람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천장 속의 장부를 확인한 후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면, 미리 장부를 숨겨놓고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면, 아니면 몇몇의 조합원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긴급 대책을 세워보았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세상 물정 모르고 어리숙했던 그때와 달리 내가 다시 24년 전으로 되돌아간다면, 증거 인멸을 대비에 장부 곳곳을 사진 찍어놓고, 그 사진들을 선배에게 전송하고서는, 용기 있게 진실을 밝혀 공정하고 정의로운 탐정 노릇을 톡톡히 하며 진실을 밝히고 싶다.


그날 일을 남편에게 얘기하자. 남편이 웃으며 한마디 한다.

“이쁜 마누라 얼굴 못 볼 뻔했구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을 수도 있었네!,..”







*하수암거: 지하에 매설한 관거로 밀폐 형 덮개가 있는 인공수로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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