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 속의 그대>
그대는 50여 가구들이 모여 사는 쌍계리 마을의 이장이다. 자고 있는 남매를 깨워 모두 빗자루를 들려 마을회관 앞에 내보냈다. 동네 청소를 다하고 집에 오면 씻고 밥 먹고 학교 가는 일. 그게 내가 해야 되는 과제 중 하나였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겨우 초등학교만 졸업한 그대는 배움의 갈망 때문인지 활자를 좋아했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해 고무신을 상으로 받았다. 상으로 받은 신발이 닳을까 신지 못하고 교문 앞에서 얼른 새 고무신으로 바꿔 신고 갔다.
그대는 타작기, 경운기, 경작기 등 새로 나온 모든 농기계를 다룰 줄 아는 만능 맥가이버였다. 기계를 사면 하루 종일 설명서를 펼쳐놓고 기계를 분해한 후 다시 맞추어 보았다. 농촌 계몽잡지인 새 농민이나, 토정비결, 명심보감 등 시골에서 보이는 책들은 버리지 않고 분석하고 이해하려 했다. 바쁜 농번기에는 본인 타작도 바쁜데 기계가 없는 집이나, 있다 하더라고 고장이 나면 사람들은 부랴부랴 그대를 찾아왔다. 신종 가전제품을 사람들 앞에서 처음 개시한 그대는 아마도 호기심과 사람 좋은 것에 대한 증거일 것이다.
80년대 두꺼비 배처럼 생긴 까만 수신 자석식 전화기를 안방에 설치하였다. 교환원을 통한 수신 전화기는 321번이라는 고유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따르릉 벨소리가 신기해 벨이 울리면 부리나케 내가 먼저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동네 사람에게 전해 주어야 할 전령사나 타 가족과 연결해줘야 할 심부름을 동반한 벨이었다.
나는 몇 번 받은 이후로 귀찮아진 벨이 울리면 못 들은 척 부리나케 뒷마당으로 숨었다. 그러면 나를 부르다 할 수 없이 본인이 뛰어가서 전령사 역할을 감당했다. TV가 처음 나왔을 때는 마당에 멍석을 펴 동네 사람들과 같이 흑백 TV를 봤다. 그렇게 두 개의 방과 마당은 동네 사람들의 놀이터고 화담을 나누는 장소였다.
<#2 꽃 같은 그대>
나는 그대의 큰 눈과 도톰한 입술을 닮았다.
호기심도 많고 감수성도 예민했다.
시골집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면 넓은 마당에 밭을 일구어, 상추며 파며 얼갈이 등을 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주변을 모두 제철 꽃으로 심어 놓았다. 마치 꽃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알리거나 마음 밭을 가꾸려고 꾸며놓은 것처럼. 더 많은 농작물 대신 빨갛고 하얀 작약, 철쭉, 국화 등 다양한 꽃들이 어울려 있었다.
특히 국화꽃을 가장 좋아하여 구절초나, 감국, 금불 초등 다양한 종류의 국화를 심었다.
흙 때가 묻어 갈라지고 굳은살이 박여버린 그의 손이 꽃을 가꿀 때는 고상한 시인의 모습으로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대는 11년 전에 췌장암을 앓았다.
형부가 있는 병원에서 마취제를 적당히 조율하여 최대한 고통을 완화시켰다. 급속도로 살이 빠지며 점점 기력이 없어지고 식물이 되어갔다. 3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의사의 말을 우리는 아무도 입 밖에 꺼내질 않았다.
“내 숨이 언제쯤 끝날지 알아야 나도 내 삶을 정리할 것 아니냐!” 그대가 담담하게 물었을 때 우리는 모두 울었다. 나는 마지막 인사를 하기 전 그대의 사진을 핸드폰에 담아 들고 갔다.
살집이 있고 베레모를 쓴 노년의 모습에서 손주들과 방패연을 만드는 환한 미소의 60대 모습,
화관을 사이에 두고 두 손을 꼭 잡은 결혼식의 젊은 청년.
젊은 군인의 모습에서 10대의 귀여운 소년의 모습으로 그는 점점 어려지고 어려져 마침내는 처음으로 돌아갔다. 어릴 적 시골 큰 집을 가득 채운 국화꽃만이 꽃말처럼 지혜와 평화의 향기를 품어냈다.
<그리운 아버지! 아버지를 닮은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