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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y 14. 2022

<자연은 설교하는 것보다 더 많이 가르친다>    ​

샌프란시스코에서 열흘 정도 있다가 비행기를 타고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우리들(아들 둘과 딸 그리고 나)은 여행 중 하룻밤 정도는 좋은 호텔에서 잠을 자자며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미국의 부동산 부자 도널드 트럼프가 지은 트럼프 호텔을 예약했고 라스베이거스에 기대감을 가지고 도착했다. 우버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니 많은 서양인들로 안내데스크가 북적거리며 복잡했다. 우리는 비용 절감 차원에서 2인실을 예약했었다. 방값이 비싸니 침대 하나를 추가해 같이 자려했다. 그런데 남은 침대가 없다 한다. 그러면 4인실로 바꾸길 원한다고 하자 그것도 다 차서 방이 없다 했다. 난감한 마음으로 호실을 찾아 문을 열었다. 다행히 방은 넓었다. 다만 넷이서 자기에는 침대가 좁으니 수건과 옷가지를 펴고 이불 없이 누군가는 소파에서 그리고 바닥에서 자야 했다. 대신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수영장과 피트니스에서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오늘 저녁 누군가는 바닥에서 자야 된다는 생각에 맘이 불편했다. 애들 앞에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걱정스러운 맘이 마치 시골쥐가 도시에 가서 가슴 졸이며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행스럽게 막내아들이 욕조가 맘에 든다며 “괜찮아요! 집 떠나면 개고생이지요! 제가 밑에서 잘게요. 아니 욕실에서 잘게요”라고 말해줘서 웃을 수 있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주니 고맙고 다행스러웠다.

비용 부담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저렴한 반 지하 숙소에서 고생했는데,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첫날밤은 다시금 불편한 잠자리로 하루를 견뎌야 했다. 그래도 '내일은 특별한 날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라는 기대감으로 잤다. 

다음날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자니언 캐니언, 그랜드 캐니언과 브라이스 캐니언을 관광하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렀다. 캐니언(canyon)은 가파른 절벽 사이에 있는 협곡이다. 강이 건조 지대의 지층을 침식할 때 형성되며, 협곡의 절벽은 수직에 가까운 각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새벽에 만난 한국인 가이드는 우리를 포함하여 모집된 몇 사람을 더 데리고 봉고차를 몰아 출발했다. 브라이스 캐니언은 유타주 남서부, 라스베이거스에서 북쪽으로 411km 차로 4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했다. 4시간 30분이면 서울에서 해남까지 가는 거리이니 어느 정도 거리를 가늠할 수 있었다. 자니언 캐니언이 남성적이라면 브라이스 캐니언은 섬세하고 여성적이라는 얘길 들었다. 새벽부터 서둘러서인지 피곤했다. 협곡이 어떻게 생겼길래 남성적 느낌이 나고 여성적 느낌이 날까 라는 궁금증을 가지며 도착한 차에서 내려 눈을 비비며 걸음을 옮기었다. 조금 걷다 보니 사람들이 몰려 있는 지점에 도착했고 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하였다. 마치 심봉사가 눈을 뜨고 심청이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내 눈에 펼쳐진 광활한 대지 위에 광경이 바로 브라이스캐니언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답고 경이로울 수가. 수많은 첨탑 모양의 조각들을 보고 그 황홀함에 숨이 멎는 듯했다. 눈앞에 펼쳐진 수백만 개의 봉우리. 그 앞에 펼쳐진 자연의 위대함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대한 나라 미국이라는 것을 체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흔히 사람들이 ‘인생 샷을 찍고 싶은 순간이 있다는데, 내게는 브라이스 캐니언을 마주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떻게 이런 자연 조형물이 되었을까? 안내문을 읽으니 5,000만-7,000만 년 전 지각변동으로 생겨난 고원지대가 비, 바람 눈에 의한 침식, 풍화작용을 거치며 신비로운 돌기둥으로 거듭난 것이란다. 이것을 후두(Hoodoo)라고 부르는데, 다른 공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브라이스캐니언 국립공원만의 볼거리라 했다. 지구 탄생에 관한 지질학적 정보를 담고 있는 후두는 32km나 분포되어 있다 하니 얼마나 어마어마한가! 부드러운 흙은 사라지고 단단한 돌기둥만 남은 수백만 개의 분홍색, 크림색 갈색, 첨탑의 모습들이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우리는 자유롭게 물통 하나씩을 들고 지그재그로 난 길을 향해 첨탑 속으로 걸어 보았다. 황토색으로 난 길 위를 걷다 보니 학창 시절에 읽었던 '어린 왕자'가 생각이 났다. 계속 걷다 보면 작은 별에 사는 순수한 어린 왕자를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이곳이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이질적이며 신기한 장면처럼 느껴져서 인가 보다. 

거대한 자연 속의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협곡을 걷는 것은 색다른 감성을 일으킬 뿐 아니라 그 속에 서있는 지극히 볼품없는 작은 나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반면 동시에 앞서 걷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한 사람의 존재가 또한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도 알게 하는 것 같다.

바쁘게 생활하며 힘들었던 현실의 무게들을 집어던지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 겸허하게 벌거벗고 나를 만나는 일. 그래서 이런 경험이 나를 다시금 세울 수 있다면 감사하고, 너까지 세울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좋고 감사하며, 그래서 우리 마음이 조금은 넉넉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더 기쁨이라고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한 달 동안의 좌충우돌의 미국 여행 중 가장 아름답고 멋진 곳으로 선택된 장소는 바로 브라이스캐니언.    내가 처음 본 브라이스 캐니언을 죽기 전에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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