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성장시킨 패배

<진것이 이긴 것이다>

by 지니

2학년 1학기가 끝나고 새로운 2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고등학교 성적과 생활은 그야말로 대입 목표를 향한 발걸음의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나치게 FM(field manual)인 큰 아들은 입시에 대해 고등학교 시절 스스로를 통제하며 욕구를 제어하려고 많이 노력하였다.

특히 공부에 방해된다고 그 좋아하는 핸드폰을 2G로 바꾸고, 지극히 내성적인 본인의 성격을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원하는 대학의 인재상에 부합하게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을 꾀하였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대학 지원자가 제출한 서류를 바탕으로 학업역량뿐만 아니라 학업에 대한 의지나 노력 열정, 적극성, 도전정신, 인성, 자기 주도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선발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성적뿐만 아니라 종합적인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할 수가 없었다.

수업시간에 학업에 대한 의지를 갖고 책임 있는 부장의 역할들을 맡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열정을 가지고 적극적인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노력한다고 원하는 결과가 꼭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엄마, 저 이번에 용기 내서 부반장 선거 한번 나가보려고요!

“오우. 아들 멋진데! 그런데 왜 반장이 아니고 부반장이야?

“반장은 1학기 반장인 명성이가 워낙 인기가 많아 선거 하나마나 탈락할 거고요,

부반장 선거는 1학기 때 성환이가 했었는데, 내가 도전한다 하니 자신은 하지 않겠다 하더라고요”.

“사교적이고, 말 잘하던 그 친구? 와! 좋은 친구 뒀네! 그래 반장이면 어떻고 부반장이면 어떠냐! 도전하는 게 중요하지!

“그럼 너 공약이 뭔데?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누나가 물어본다.

“누나! 내가 한 학기 동안 수업 끝나고 문단속이랑 청소 다 하려고!”

“헐. 아무리 감투가 좋지만 제 뭐라니? 한 학기 동안 청소를 다한다고?” 나는 어이가 없고 말문이 막혀 아들을 쳐다보았다.

나의 표정을 보더니 누나가 날 보고 윙크를 한다.

“그래! 네가 감당할 수 있으면 한번 해봐! 너 성격상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일 테니!” 누나의 응원에 아들은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가족들은 순조로운 다음날을 기대하며 하루를 맞이했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아들이 집에 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후 나오질 않는다.

아들이 좋아하는 닭 날개 튀김인 ‘허니 윙과 과일’을 먹자고 누나가 재촉하니 마지못해 소파에 나와 앉는다.

“오늘 성환이가 부반장 선거에 나오지 않을 거다 하더니 막상 후보자 선출 시 재 도전했어!”

“정말? 걔는 양심에 구멍 났냐?” 나는 어제 아들이 한 말을 기억하며 아들의 시무룩한 표정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양심에 털 난거지! 듣고 있던 누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순간. 나도 당황해서 왜 그렇게 말을 가볍게 내뱉나 하는 생각이 들으니까, 성환이를 꼭 이기고 싶더라고 “

“그래서?”

“그래서 투표했지!”

“결과는?”결과가 궁금해진 나는 빨리 말하기를 재촉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투표 결과가 14:14. 다시 부반장으로서 나의 공약에 대해 발표하고 다시 2차 투표했어!”


결과는 2학기 반장은 1학기에 이어 단독으로 출마하니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부반장 선거가 박빙이 되어버리자 친구들도 진지해졌다는 것이다.

2차 결과는 14:13 그런데 1표는 이름을 써야 하는데 누군가 번호 1이라고 쓴 것이다.

아들의 번호가 1번이어서 순간 선생님도 당황하시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아들이 먼저

“선생님 성환이가 당선된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선생님께서 이름을 쓰라고 한 것이기에 한 표는 기권으로 처리되어야 맞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한다. 그래서 선생님과 친구들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는 얘기다.

누나와 나는 부반장이 되고 안 되고의 문제보다 한입으로 두 말하는 친구에게 받았을 상처가 걱정되었다.

“어차피 지난 일이니 쿨 하게 받아들이고 잊어버려. 사람 맘이 다 내 맘 같지 않지! 사실 그리고 그거 별로 중요하지 않아!”나는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했다.

그렇게 내게도 약간은 우울한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날 아들은 학교를 다녀온 후 뭔가 정리가 되었는지 편안하고 밝은 얼굴이다.

“엄마 오늘 학교 가자마자 내가 성환이한테 악수를 청하고 응원해줬어요!

“생각해보니까 처음에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곰곰 생각해보니까, 부반장으로서의 타이틀보다 내가 정말 하고자 했던 의도를 생각하게 되더라고.”

“그래서?”

“사실 부반장이 아니더라도 내세운 공약들은 어쩌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하면 좋은 일 이잖아”

“그렇긴 하지!”

“그래서 내가 내세운 공약 중 특히 청소나 쓰레기통 청결 문단속 같은 미흡한 부분은 스스로 처리하겠다고 애들한테 얘기했어!”

“정말 속도 좋으시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번 청소하려면 장난 아닐 텐데...!”

말은 이렇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이 주도적이면서 자발적으로 뭔가를 실천하고 정리해 나가는 모습이 대견해 보였다.

속 깊은 아들을 보니 잘 자라는 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아버지는 범죄 없는 마을인 고향 예산에 아들이 태어났을 때, 종손이 태어났다고 기뻐하며 집 앞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으셨다.

명절 때마다 가서 보게 되면 쑥쑥 커져있는 소나무를 볼 때마다 이번엔 키가 얼마나 컸는지 둘레는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해진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나무가 잘 자라는 것을 보면 기대감과 흥분을 감출 수 없다.

나무는 해마다 성장해 있다.

나무속의 나이테는 보통 1년에 하나씩 생긴다.

줄기 형성층에서 세포 분열이 일어나면서 두꺼워지고 커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하루의 일과처럼 나무도 하나의 나이테가 형성되기까지는 하루하루의 갈등과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하나 스스로 배워가며 협력해서 만드는 아름다운 나이테.

햇볕을 받는 양과, 겨울을 이겨내는 정도에 따라 테의 간격도 달라지겠지만, 넓은 하늘을 향해

곧고 바르게 높이 서있을 때에 나무의 속심도 더 단단한 겹겹의 살을 붙어나갈 것이다.

아들이 성장한다고 믿는 믿음의 나이테를 보면서 내 속의 나이테는 어떤 모습인지 돌아보게 하는 하루다.

우리 집 아파트 창문 너머 길게 뻗은 소나무가 오늘따라 더욱 푸르르다.



이전 03화why n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