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셋이 모두 지쳐있다.
큰 녀석은 학업성적이 좋아 장학금으로 갈 수 있는 미국 교환학생의 특혜를 코로나로 인해 포기했다.
처음에는 외국에 가서 공부하기를 너무나 간절히 원했기에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숙소에서 조용히 숨어 지내겠다고 아이처럼 떼를 썼다. 그 얘길 들은 외할머니께서
"목숨보다 중한 게 뭔디 그런데를 갈려고 햐 . 배워서 뭐하게! 죽으면 끝인디. 안되아! 안된다." 너 어미로서 자식 그런대로 보내는 거 아니다." 하면서 내 책임까지 들먹였다.
큰아이의 마음이 바뀔까 봐 가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아 놓고도 매일 전화를 하셨다.
큰아이는 아직은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라 불안해 보인다. 하지만 24시간이 아깝지 않게 시간을 쪼개며 공부하며 일한다. 자신의 가치와 실력을 높이기 열심히 사는 것을 보면, 허구한 날 놀면서 책이나 읽고 허세를 부렸던 나의 20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할 수 없이 학기 중으로 졸업을 하고 공부를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면 해외취업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 같다.
둘째 녀석은 코로나 학번이다. 20학번이니 2년 차 대학 새내기이다.
코로나 학번답게 2학년 1학기를 마칠 때까지 학교를 2, 3번 간 것 같다.
낭만적이고 화려한 대학생활을 기대했건만, 입학식도 엠티도 없는 우울한 학번이다.
몇몇의 친구들은 어차피 학교를 못 가느니 지혜롭게 군대 복무를 지원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하면서 이미 입대한 친구도 꽤 있다.
"억울해서 난 못가! 좀 있음 괜찮아질 거야" 하며 버티다가 벌써 3학기가 지났다.
하지만 미루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마음은 불편하고 내키지 않는 듯 입만 열면 억울함을 호소한다.
"백신 맞고 천명 미만이면 난 학교 갈 수 있어! 제발, 제발... 꼭 한 학기만이라도 대학생활하고 갈 수 있기를!". 하며 등교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얘기한다. 그러나 현재 변이 바이러스의 상태는 너무 심각해서 아들의 기대를 저버릴 가능성이 크다.
셋째 아이를 말하려 하니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제일 힘들어하는 고3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3의 현실, 공부하지 않아도 입시에 대한 중압감은 얼마나 큰지 알기에 가족들은 늦게까지 입시 준비하는 막내 녀석을 보면 안쓰러워했다.
일주일 전 갑자기 막내 녀석이 "엄마 저 고등학교만 졸업할 거예요!"라며 말을 꺼낸다.
"어? 뭐라고? 엄마가 잘못 들었나! 뭐라고? " 하며 재차 물어보니
"저는 고등학교만 졸업할 거예요!"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진지한 막내아들의 얼굴을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이유인즉슨 본인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그림에 대한 특별한 열정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막상 대학을 간다 해도 잘 버틸 자신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2,3개월만 지나면 수시 원서 접수인 데다 너는 상을 받은 이력도 있는데... 이것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며 얘기하려 했다.
하지만 앳된 얼굴은 사라지고 심각하고 진지하게 말을 꺼내는 녀석의 얼굴을 보니 나의 생각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열심히 잘 준비해 왔는데 아깝지 않을까?" 맘을 진정하며 조심스럽게 되묻자,
"지금까지 열심히 한 것도 저고 결정하는 것도 저예요. 저의 인생이니 저를 존중해주세요!"라며 일침을 놓는다.
'아니 뭐래! 양심이 있는 거야? 지금까지 학원비며 뒷바라지 한 엄마한테 하는 말이 내 인생이니 빠져 줄래요?' 하는 말처럼 들리니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하지만 나의 내공. 즉 사춘기도 세 번, 입시도 세 번째인 나의 내공을 생각하며 숨을 몰아쉬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 힘든가 보네! 어련히 알아서 생각했겠어!.... 그럼 뭐하고 싶은데?"라고 물으니
"제주도에 가고 싶어요! 저 좀 제주도 보내주시면 안 되나요?"라고 말한다.
'아니 지금 밤을 새우고 준비해도 모자랄 판에 배가 불러 구만 불렀어! 그럼 준비하는 50만 명의 학생은 어떻게 버틴 다니!'라며 속으로 내뱉어서 아이는 듣지 못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침묵이 흘렀다.
"why not?"
이렇게 해서 지금 막 세 명의 아이들을 김포공항에 데려다주고 왔다.
독립된 개체로 키우는 것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부모로서 대신해줄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십 년 전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는 내게 웃으면서 '평생 사람 구실 못할 것 같다'는 말을 가끔 하셨다.
유난히 겁이 많고, 남에게 잘 속고, 착하기만 하고, 눈물 많고, 옹골지고 야무 진 게 없다고 걱정하셨다.
자전거도 못 타는 내가 운전면허를 따니 집안에 경사 났다고 통닭 2마리를 사 와서 파티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의 과한 행동에 웃음이 절로 난다.
사람 구실 못할 거 같다는 말은 비난이 아니라 '이 험한 세상에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마냥 염려와 걱정을 내뱉은 말이었다.
이제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있다.
집에 오니 캐리어 가방이 놓여있던 자리에는 휴대용 우산과, 물티슈와 두루마리 휴지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비 올지도 모르고 급히 써야 될지도 모르는 휴지를 꼭 넣어가라 챙겨 줬는데, 짐만 될 뿐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사람 구실 못할 것 같은 핏덩어리들이 어느새 성인이 되고 자기 방식대로 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이 대견하고 감사하다.
Why not?
나는 나만의 시간을 또다시 가질 수 있어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