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VS. 갱년기

by 지니

흔한 말로 사춘기와 갱년기 중 싸우면 누가 이기냐 이런 표현을 하는데 그만큼 갱년기도 사춘기 이상으로 신체적 심리적으로 큰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심한 갱년기를 겪고 있는 요즘, 나의 기분은 아무도 못 말린다.

안하무인, 버럭쟁이를 넘어 쌈닭이 되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두 손 모아 ‘오늘도 무사히’라는 표어를 내걸고 매번 나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핀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가만있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쌈닭이 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점심 먹고 설거지를 한 후 옆집에 놀러 가 아줌마들과 차라도 한잔 마시고 있으면 용건도 없으면서 남편에게 전화가 온다.

“어디야?” 아니 왜 물을까, 갈 데도 없고 숨 좀 돌리며 차 마시고 있는데, 말은 ‘궁금해서’라고 하지만, 옆에 있어서 뭐든 챙겨주는 익숙함을 맛보길 바라는 아쉬움이 들려온다.

그러면서 언제 올 거냐고 또 묻는다. ‘조금 있다 갈게’라고 말하면 안 된다. 정확하진 않더라도 갈 수 있는 ‘최대의 시간’을 얘기해줘야 또다시 전화가 오지 않는다.

집에 오면 ‘네가 없어 불편했다’라는 말 대신 ‘일없는 여자들의 수다는 재미있었냐’라는 식의 핀잔 섞인 말에

대뜸 나는 쌈닭으로 변해 “내 몸과 맘이 힘들어 겨우 숨 쉬고 있는 내게, 당신의 말보다 동병상련의 갱년기 아줌마들의 수다가 백배나 효과 있는 위로가 된다”라고 쏘아붙인다.

저녁때가 되니 세 아이들은 고기가 먹고 싶다 했다. 감자와 양파, 버섯과 함께 삼겹살을 구웠다. 모두 배고팠는지 굽는 속도와 먹는 속도가 맞질 않는다. 굽는 족족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만다. 먹이는 게 기쁘고 잘 먹어주니 고맙기도 하다. 그러나 밑반찬을 챙기고, 기름도 튀고, 장시간 서있으려니 몸이 힘들어진다.

그 와중에 남편과 아이들은 “파 채나 무 쌈은 없어요?”하고 묻는다,

없다 하니 삼겹살 살 때 같이 샀어야 된다고 말한다. 깜박했다 하니

“메모 좀 하지!” 당신은 메모를 안 하더라! 그게 뭐 어렵다고! “라는 남편의 말에 부르르 화가 난다.

“힘들게 1시간이 넘게 서서 밥도 못 먹고 챙겨주는데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예요?” 나는 또다시 쌈닭이 된다.

갱년기는 나에게 우울감이나 불안감뿐 아니라, 가족들에게 서운함을 느끼게도 한다. 25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참고 이겨냈는데도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 것 같은 남편에게는 더 얄미운 마음마저 든다.

남편의 생일은 지난 화요일이었다. 큰애와 둘째는 아르바이트가 10시에 끝나고, 셋째도 학원 끝나고 오면 밤 10시 30분이다.

나는 하루를 바쁘게 움직이고 아이들이 끝날 즈음, 남편과 운동 후 케이크와 치킨, 과일과 몇 가지 음식을 준비해 파티를 준비했다.

저녁 먹기엔 좀 늦은 시간이었지만 기념일을 모른 채 할 수는 없으니 매번 했듯이 늦게 파티를 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남편은 뭐가 속이 상한지 퉁퉁거리며 묻는 말에만 단답식으로 답하고 말을 안 한다.

이젠 갱년기 엄마에 아빠 눈치까지 보는 게 아이들은 답답한 모양이다.

왜 그러냐고 속상한 게 있으면 말을 해야 알지라며 나는 재차 다그쳐 물었다.

“답이 알고 싶어? 당신이 변해서 그래! 갑작스러운 남편의 큰소리에 놀라 딸아이가 안방으로 들어왔다.

“아빠 왜 그래요?”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내 생일에 내가 치킨 사 오고 케이크 사 오고, 그 흔한 이모티콘 보내는 놈 하나 없고, 선물하나 주는 놈 없고, 당신은 음식도, 편지 한쪽 없고 나는 여직 가족들 위해 애써왔는데... 애들보다 당신이 제일 많이 변했어!”라고 말하며 재차 내 이름을 부르며 많이 변했다고 슬프게 말했다.

쌓인 게 많았나 보다. 사실 다 맞는 얘기이긴 하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미안해졌다. 갱년기 핑계로 너무 무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매번 생일마다 풍선도 불고, 케이크를 굽고 롤링페이퍼를 쓰고, 손수 몇 가지의 음식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무성의하게 지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딸도 한마디 했다.

“아빠 저희가 필요한 것 있냐고 사드린다고 하니 됐다 하고, 그래도 생각해서 뭘 사드리면, 다 필요 없는 것이니 반품하라 하시고, 그리고 매번 다들 바쁜 채로 겨우 11시쯤 모여 이렇게 생일잔치했었는데........”하며 억울하다는 듯 말한다.

순간 드는 생각에 ‘아! 남편도 갱년기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 말이나 딸의 말에 모두 공감하며 남편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에잇. 이번 생일파티는 좀 그랬어! 이번 주 토요일 다시 생일파티해요. 우린 이번 생일부터는 무조건 일주일씩 생일파티해주기다! 알았지 딸?”

“다 지났는데 무슨 생일잔치를 또 해!” 남편은 투덜거리긴 하지만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고,

딸은 내 말과 슬픈 아빠 얼굴을 보며 알겠다며 “네!”라고 마지못해 대답했다.

순식간에 처리했던 일들도 이젠 다리도 아프고 힘들어져 시간을 가지고 준비해야 했다.

무엇보다 안면 홍조 같은 증상은 참을 만 한데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하는 상열감은 조금 힘들었다.

특별히 이번은 남편 갱년기 생일 기념 파티이다.

만들기 쉬우면서 남성갱년기에 좋다는 양배추 샐러드, 시금치무침, 그리고 양념만 발라 구워낸 장어를 준비했다.

딸은 ‘건강 관리되는 손목시계’를 아빠가 신기해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갤럭시 와치’를 주문해줬다.

둘째는 무선 이어폰을 교체해 줬고, 셋째는 학원 끝나고 오는 길에 용돈을 탈탈 털어 북어포를 사 왔다.

식탁 위엔 준비한 다양한 음식들과 치킨까지 ‘날 잡수 세요’하며 기다리고 앉아 있다.

간식으로 좋아하는 북어포까지 완벽히 준비해 놓고 이젠 결정적으로 케이크만 놓으면 되었다.

“아니 이게 무슨 냄새지? 탄내 아니야?” 남편의 말에 깜짝 놀라 살펴보니 준비하고 있던 케이크가 타고 있다. 얼른 오븐을 껐다. 밑은 1센티 정도 새까맣게 타고, 반죽 틀이 기울어져 오른쪽은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케이크 없는 생일은 없으니 모양이 엉망이어도 그냥 먹을 수밖에.

식탁 위에 찌그러진 모카케이크를 놓으니 애들이 한 마디씩 한다.

“완전 똥이다, 엄마 이건 비주얼이! ㅎㅎㅎ”,

“엄마 힘들어서 그냥 막 하신 듯!”“

“땅 위에 떨어진 호랑이 설사 똥 같네!”

순간 다시 내 맘을 들킨 것 같아 당황하였다.

사실 음식을 할 때 순간 방심하거나 조금만 대충 한다면 음식은 꼭 티가 나는 법이다.

마치 상대성 이론, 뿌린 대로 거둔다 등..... 거기에 맞는 말들이 이것저것 생각나며 내가 좀 신경 쓸걸 하고 후회했다. 조금 힘들고 귀찮아하며 틀을 잡을 때와 타이머를 맞추지 않은 게 실수다.

순간 나를 살리는 남편의 말

“모양으로 먹지 말고 맛으로 먹으면 되지! 나는 엄마가 해준 케이크가 제일 맛있더라!”

“오우! 멋진데! 아빠 다~ 드세요!”딸과 아들의 너스레에 아빠는 웃음을 지었다.

너그럽게 웃어넘기는 남편의 말에 화요일의 생일파티의 연속인 토요일의 갱년기 생일파티는 즐겁게 마쳤다.

남편의 웃음 뒤에 서있던 나는 순간 깨달았다.

당연하게 이루어진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느껴졌다.

평범하지만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아온 것과 여전히 내 옆에서 따뜻하게 나를 쓰다듬어주는 유능함을 가진 남편. 서로가 서운했다 미워했다 해도 따뜻하고 건강한 우리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의 갱년기에 겪는 서투른 시작. 기억에 남는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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