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탱시킨 한마디

<외로움에 대하여>

by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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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전주로 떠났다.

그녀가 떠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고 생각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말로 떠나버린 것이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고 옷가지며 화장품 그리고 아끼는 몇 권의 책을 싸서 정말로 떠나버린 것이다.

언니 없이 내가 살 수 있을까?

그동안 언니는 언니로서의 의미보다는 안정감을 주는 부모 같은 보호자로서의 위치였다.

스무 살에 시골에서 올라온 나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밥이며 빨래 청소는 물론 자신의 머리 빗질까지... 학교 가기 바쁜 시간에도 감은 머리를 언니에게 들이대고 말리고 손질해 달라고 내밀었었다.

낯선 서울에서 숨 쉬며 학교 생활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놓고 그녀는 중매결혼이라는 사건에 휘말려 나를 놓고 떠난 것이다.

이별을 감지했다 할지라도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은 없었다.

본인이 선택해서 떠나면 혼자 남는 것이라고, 나라고 혼자 못살겠냐고 생각했지만 막연한 생각이 현실이 되고 난 뒤에 깨달았다. 가슴 한쪽이 뻥 뚫린 것처럼 공허해지고 허전해지는 마음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나는 떠나는 언니에게 줄 것이 없었다.

10만 원. 어린 내가 가지고 있는 전부의 돈을 봉투에 넣어 언니의 주머니에 몰래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집에 와 텅 빈 방 안에서 엉엉 울었다.


서울에서 정 붙일 때 없고 외톨이로 혼자 남겨진 어두운 밤.

혼자서 아침을 맞는 것도 싫었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아무도 관심 같지 않고 오로지 혼자 견뎌내는 것이 싫었다.

그때부터 나는 혼자 사는 나의 집을 개방했다.

신앙과 문학에 대한 스터디를 하고, 얘기하고픈 사람 있으면 언제든지 반갑게 맞이해주며 개인의 사생활을 포기했다. 그렇게 자취방은 친구, 후배, 선배 등 언제든 사람들로 북적댔다. 한마디로 주변 사람들의 아지트가 된 것이다.

하지만 언니가 떠난 뒤로 나는 깊은 잠을 자는 것을 어려워했다.

가슴 깊은 곳에 쌓아두고 내뱉지 못한 말들. 좋은 동생이 못되어줘서 미안하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하지 못한 죄책감에 혼자라는 외로움을 넘어 고독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외로움이 조금은 익숙해져 가고 삶의 의미를 나름대로 찾아내려 했지만 더 깊은 고독함에 몸부림칠 때,

조금은 견뎌 내보자라고 다짐을 할 때 남편의 한마디는 나에게 고마움으로 다가왔다. 남편은 장미 꽃다발을 안기면서 얘기했다. “나랑 살면 절대 외롭지 않게 해 줄게”

절대라는 말...‘절대’.

절대라는 말은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도 붙지 않고 비교되거나 그에 맞설 만한 것이 없는 상태이다.

아니 부사로서의 의미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라는 말이다.

삶의 어떤 어려움이 와도, ‘나는 반드시 너를 외롭게 해주지 않을 께!’, 아니 ‘죽을 만큼의 고통이 너의 앞에 닥쳐와도 나는 반드시 너를 외롭게 하지 않고 지켜줄게’.

나는 이 말에 그만 센티해지고 그렇게 말한 그가 하나의 의미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더할 수 없는 순수함과 성실함까지 더해지자 내 맘은 그에게 홀라당 넘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인간은 평생 외롭고 고독한 존재라는 명제를 안고 사는데 뭐래! 누가 누구를 외롭지 않게 해 준다고! 그때 나는 사탕발림 같은 달콤한 유혹의 말을 듣고 싶었고,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나 보다.

실존주의 사르트르는 외로움은 인간이 의미 있는 삶을 갈망하는 의식과, 우주에서 고립된 무가치함 사이의 모순 때문에 인간 조건의 근본적인 요소라는 인식론적 외로움을 얘기했다.

사람은 우주와 연결되어 활동하고 소통하고 창조하는데, 이런 과정이 끊어진 기분이 외로움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외로움은 고독과 분리되는데 외로움은 누군가와 함께 하면 해소되거나 줄어들 수는 있다.

반면 고독감은 어떤가!

고독감은 외로움보다는 한 단계 진화된 상태인 것 같다.

고독감은 외로움을 넘어 혼자 있는 것을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외롭지 않다 하더라도 그 삶은 꼭 만족할 수 없으며 또 다른 나를 채우고자 하는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성장하고 사유하는 고독함의 또 다른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남편은 나에게 결혼과 동시에 지금까지 나에게 약속을 지킨 걸까!

본인은 제쳐두고 라도 아이 셋에다 개순이까지 키우고 있으니 외로울 틈이 없다. 나아가 고독을 즐기거나 사유하는 일은 5인 식구가 북적대며 집에 있으니 내 생활에선 언감생심 어림없는 얘기다.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사유하지 못한 질문을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순수함과 열정만 가득했던 지고지순한 남편의 고백.


수시 원서 실기시험에 셋째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물었다.

당신이 “나랑 살면 절대 외롭게 하지 않을게라고 얘기했던 거 기억나?”

"응!" 활기 없게 말하면서 명확하게 대답하는 말에 순간 눈동자가 마주쳤다.

찰나의 순간으로 우린 서로 과거를 다녀왔지만 얼굴과 몸은 변화되었다.

어느 때든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면 외로움은 없는 것이다.

그때의 향기가 생각나서인가.

우리는 반짝여진 눈을 보며 둘 다 한참을 소리 내며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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