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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23. 2021

내가 생각하는 환상적인 휴가는?


#1 현재 바로 남편과 떠나고 싶은 곳

                                                                  (타이티섬)


“당신과 함께 꼭 한번 여기에 같이 오고 싶었어요!” 나는 타이티 섬의 에메랄드 빛 산호를 보며 말했다.

"당신이 기뻐하니 나도 기분이 좋아! 원시와 야생을 보면서 본능을 일깨웠던 고갱이 왜 이곳에서 원주민의 삶을 닮길 원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그가 말했다.

"이곳에 오니 고갱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가 묻혀있는 타이티 일부의 섬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수줍으면서도 기쁨과 확신에 찬 미소와 함께 대답해 줬다. 그의 눈과 나의 눈은 이미 푸른 바다와 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준비하며 꿈꿔 왔던 시간들이다. 남태평양에 자리한 5개 군도를 구성하는 189개의 섬으로 이뤄진 타이티. 그중에서도 폴 고갱이 죽기 전 마지막 여생을 보낸 이곳을 나는 얼마나 오고 싶어 했던가. 환상적인 블루 빛의 초호에 맞닿은 하얀 모래사장과 잔잔한 바다가 펼쳐져 있는 섬. 여러 개의 에메랄드 빛 산호가 가득하다. 이곳에 오니 시간과 공간을 넘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나의 심장 소리를 아련한 기억으로라도 찾을 수 있다. 금세 한번 보고도, 평생 가고 싶었던 고향에 온 건 같은 기분이 들며 50년 전의 작은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2   10년 후의 휴가를 꿈꾸며

                                                              (샌프란시스코 도시 모습)


전체적인 여행 코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세미티 그리고 라스베이거스 그랜드 캐니언에서 로스 엔젤레스 샌디에이고 그런 후 한국으로 오는 여행 코스를 잡았다. 먼저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한다.  수박 겉핥기 식의 관광이 아닌 제대로 그 동네 동네마다 맛을 보면서 많이 걷고 먹고 느끼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우선은 자유롭고 진보적인 이미지의 도시를 느껴보고, 트윈 피크스의 드라이브 코스를 운전하며 맛집의 음식도 먹어본다. 특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에서 금문교를 바라보며 멋진 와인도 한잔씩 마신다. 요세미티 공원에서는 웅장한 나무 숲에서 자연 속에 머문 채 캠핑을 통해 각자의 살아온 삶의 실타래들을 풀어간다. 그런 후 비행기를 타고 라스베이거스로 달려가 그랜드캐니언과 브라이스 캐니언을 여행한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위대한 협곡들을 만나면서 지극히 작은 미미한 나의 존재가 이렇게도 감사하게 살 수 있는 것에 대한 경의를 표하게 된다.  미국 서부 여행을 5남매가 함께 오니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긴 시간 동안 서로 부대껴도 얼굴 한번 붉힐 일이 없다. 나이 먹어 형제의 여행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서로 속을 알고, 장단점 다 아는 데다 지나간 세월만큼 오랜 시간 각자의 가족으로 인해 서로가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쉽고 안타까워 불쌍한 마음이 절로 드니 서로 뭐라도 주고 싶어 안달이 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늙고 병들어가고 죽음을 향해 살아간다지만, 죽음을 기억하며 하루하루 순간들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지니 웬만한 어려움이 생겨도, 아니면 상대에게 작은 손해를 입혀도 쉽게 넘길 수 있는 아량이 생긴다.

두 다리 성하고 잘 걸을 수 있을 때 한번 가보자라며 ' 10년 전부터 계획한 여행' 바로 지금이 그날인 것이다.


#3 미래의 15년? 20년? 후 집에서 휴가를 맞이하는 상상을 하며

제법 바람이 부는 봄 날씨다. 2021년 하고도 15년이 지났으니 세월이 빠르다. 이미 저녁을 먹은 손자 손녀들이 입이 심심하니 뭐 좀 먹을 것 없나 이 방 저 방을 자꾸 돌아다닌다. 심심하기도 하고 군것질이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나 보다. 저장해놓은 고구마 몇 개를 가져와 구우려고 챙기다 보니, 열어놓았던 안방 뒷문을 넘어 뒷마당에 심은 보리들이 제법 자라 있는 게 보인다. 어릴 적 아버지가 쓰러진 벼들을 일으켜 세우며 간식으로 일부 보리들을 구워 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큰 애들을 불러 마당에 우선 불을 피웠다. 가져온 고구마를 머릿수대로 포일에 싸서 불 속에 집어넣었다. 옹기종기 둥그렇게 모여 앉은 아이들에게 보란 듯이 나는 볏 집들을 태웠다. 고구마가 잘 익을 수 있게 불 속에 집어넣고 그 위에 연기를 피워 보리를 익히는 것이다. 까맣게 익은 이삭을 손에 놓고 비비면서 후후 불면 알갱이가 옷을 벗고 먹기 좋은 알갱이가 된다. 그것을 까부르며 먹어보니 하나둘씩 아이들도 나를 따라 한다. 점점 연기 맛과 보리 맛이 어우러지니 손과 옷이 새까맣게 변하여지고, 검게 그을린 서로의 얼굴을 보며 자지러진 웃음꽃을 핀다. 비볐던 손이 어느새 얼굴을 문지르고 새까맣게 변한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손자가 말한다.

                            “이게 무슨 맛이야! 연기 맛이랑, 할머니 할아버지 냄새랑 풀 맛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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