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우울증 별거 없네

가소로운 나의 생각

by 혜랑

약물치료가 2주 정도 지나자 몸이 어느 정도 약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효과가 조금씩 나타났다.

그런데 그게 좀 한정적이었다.

출근을 하면 약효가 뚜렷했고, 퇴근을 하면 약효가 다 떨어졌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할 때면 매번 다 낫은 느낌이 들었다.

거울 안에서 한껏 기운이 넘쳤다.

회사로 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일이 아무리 많아도 나는 그야말로 활기찼다.

약을 먹는 일상이 익숙해지면서 나는 점차 평온함을 찾아갔다.

동료들은 약물치료 전후로 변한 것 없이 밝다고 했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우울증이라니 의사가 돌팔이임이 틀림없다고 놀려댔다.

동료들은 늘 내가 한 일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 노력을 인정하고 의견을 내면 적극적으로 존중해 주었다.

이곳에서 나는 능력 있는 사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회사는 나를 끝없이 북돋았다.

인정과 칭찬이 반복되어 점차 단단히 쌓여갔다.

그럴수록 회사에서도 이따금씩 느껴지던 우울감이 점차 줄어들었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약물치료 기간을 물었었다.

그때 하신 선생님의 대답이 기억났다.

'환자분 증상은 1년 이상은 봐야 합니다.'

나는 콧웃음을 쳤다.

"앞으로 두 달이면 다 털고 일어나겠는걸! 난 정말 괜찮은 환자야!"


나는 일하며 에너지를 얻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마음을 알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나라는 사람이 잘 해내고 있다고 뿌듯해했다.


햇빛이 쨍쨍하고 온통 무지개 빛으로 가득했던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사방이 잿빛이었다.

회사의 모든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다 내 편이었다.

그런데 가장 내 편이어야 했던 남편은 계속 뒤돌아보고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집에선 극으로 외로움을 느꼈다.

퇴근 후엔 급격히 기운을 못 차리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냥 멍하니 있었다.

에너지가 다 빠져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손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집은 점점 어질러졌다.

치운다고 치우는데도 더 어질러졌다.

아이들과 배달음식으로 저녁을 때우는 일도 잦아졌다.


언젠가부터 남편은 퇴근하고 집을 돌아보면서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가능하다면 남편의 한숨을 풍선 하나에 가득 모으고 싶었다.

그렇게 모은 한숨풍선을 남편 머리 위에 두고 팡! 터트려 버리고 싶었다.

남편이 퇴근하면 나는 다시 출근하고 싶었다.

밖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집은 내 안식처가 아니었다.

전쟁직전의 불안감이 감도는 집에서 매일 아침 회사로 도망쳤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우울증은 두 가지 얼굴을 하고 나를 놀려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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