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게 그리고 가족의 무게
"나 우울증이래."
"저 우울증에 걸렸대요."
"내가 우울증이라니..!"
진단 이후 2주가 지나자 에너지가 슬며시 올라왔다.
나는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따라 주변에 우울증을 별일 아니란 듯 전달했다.
그래봤자 절친 두 명, 엄마와 남편, 직장뿐이었다.
직장에서는 요즘 세상엔 흔한 일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하기 전후 똑같이 나를 대했다.
그래서 직장에 있을 때면 마음이 편하다고 느껴졌다.
친구들은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야야, 네 잘못 아니야. 너무 열심히 살아서 그래!"
"맞아 맞아. 이제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래, 참지 말고 다 해. 너무 참았어 이때까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우울증이라는 녀석에게 주먹이라도 날릴 듯했다.
이따금씩 반복해서 우울감을 호소에도 단 한 번도 외면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어김없이 허공에 주먹질을 해주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달랐다.
가족이라서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수많은 약을 오랫동안 먹고 있는 나를 보며 어느 날 담담히 물었다.
"엄마, 그런데 엄마는 왜 약을 이렇게 많이 먹어요?"
"맞아요. 어디가 많이 아픈 거예요?"
순간 이야기를 그대로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아직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어려운 병이었다.
나도 잘 이해할 수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에너지 충전이 잘 안 되는 상황이야.
그래서 충전 잘되는 약을 먹고 있어."
사랑이 많은 둘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엄마는 원래 내가 안아주면 충전됐잖아요. 이제 안되나?"
나는 둘째를 꼬옥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니, 이 충천은 지금도 엄청 잘돼! 다른 충전이 잘 안 되어서 그래. 대신 약 먹고 있으니 금방 나을 거야!"
이후로 아이들은 내가 어지러워하거나 지쳐서 힘들어할 때면 누구보다 먼저 일어섰다.
"엄마, 침대에 누워요. 지금은 좀 쉬어야겠어요."
"맞아, 막내는 우리가 돌볼게요. 잠 좀 자요, 엄마."
그리고 막내는 불을 탁 끄고 문을 조용히 닫았다.
옆방에서 소곤거리다가 꺄륵 웃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장가 삼아 잠이 들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한없이 감사한 작은 아이들의 큰 사랑이었다.
친정엄마는 또 달랐다.
엄마는 처음부터 눈빛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이고, 내 딸 우짜노'
하는 말이 얼굴에서 다 보였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는 말은 달랐다.
"요새 그런 건 병도 아니라더라. 약 먹으면 금방 낫는단다.
너무 신경 쓰면 더 병 된다. 신경 쓰지 마라."
정말 신경 쓰이는 듯이 엄마는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는 남편과 다퉈서 생긴 스트레스가
내 우울증에 주원인인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 엄마는 '자식 같은 사위'라고 남편을 아꼈다.
업무가 많아 힘든 날엔 '짠한 우리 사위' 하시던 엄마였다.
그런데 어느 날은 엄마가 남편이 밉다고 했다.
옆에 있어 줄 수 없는 엄마 마음에 같이 있는 사위가 좀 잘 챙겨줬으면 했나 보다.
그래주지 않는 사위에게 야속함과 서운함 그러다 미운 마음이 들었나 보다.
시간이 더 지나자 엄마는 자책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나를 키울 때 충분한 사랑과 인정과 믿음을 못줘서 그렇다고 눈물을 훔쳤다.
한 날은 먹고사는 게 바빠서 그 여린 마음 한번 보듬어 본 적 없다고 우셨다.
엄마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는 나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엄마 이건 누가 잘못해서 생기는 게 아니래.
그냥 생기는 거래. 그러니까 누구 탓도 아니야."
엄마는 당신이 무너질까 봐 내가 우는 날엔 안아주지도 못하고
옆에서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밤새 혼자 펑펑 울고 다음 날 나 먹으라고 과일을 들고 오던 엄마의 눈은 종종 부어있었다.
나 때문에 엄마도 우울증에 걸릴까 봐 두려웠던 날들이었다.
주변에서 이렇게 도와주는데도 남편만은 달랐다.
남편은 몇 년이 지나도록 몰랐다.
내가 무기력함에 설거지를 하다 말고 방에 고꾸라져 있었던 날이 있었다.
그때 남편은 나에게 배려심이 없다고 했다.
우울증을 방패로 사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학교일은 잘하고 있지 않냐고 그건 재밌으니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집안일은 귀찮으니까 우울증을 이유로 안 하고 미루는 거라고 했다.
내가 상황을 설명해도 남편은 변명이라고 생각하고 믿어주지 않아다.
정확히는 믿는다고 말하며 믿지는 않았다.
그의 말 한마디 한숨 하나하나가 내겐 치명적이었다.
가장 기대고 싶었던 사람이 가장 먼 곳에서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 다리 건넌 친구들은 정말 깔끔하게 내게 필요한 위로를 했다.
우린 정말 오래된 친구고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지만 '남'이니까.
그런데 가족은 그렇지 않았다.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가족들의 마음엔 가차 없이 죄책감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탓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을 딛고 진짜 나를 위한 말과 행동을 해줄 수 있을 때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순수한 아이들만 그냥 이 상황을 그 자체로 바라봤다.
그나마 그런 아이들이 곁에 있어줘서 나는 울다가도 바보처럼 배시시 웃곤 했다.
악화되는 건지 좋아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때만 해도 아득했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