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기록 7) 기다림 훈육의 효과

기다려와 기다릴게

by 혜랑

큰 아이들(연년생 개월 차)이 서너 살쯤 되니 둘 다 고집이 단단히 생겨버렸다.

한 녀석이 갑자기 옷을 안 입겠다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러면 다른 녀석은 자신도 봐달라고 괜한 트집을 잡았다.


처음 두 녀석이 동시에 울고 보챌 때면 머리가 하얘졌다.

그래서 왜 심술이 났는지 이유를 생각할 틈도 없이 짜증을 냈다.


그러다가 짜증 내는 내 모습이 싫어서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달래려고 했다.

침착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침착한 대사와 그렇지 못한 말투는 별 효과가 없었다.

예컨대 어금니를 꽉 문채로 억지웃음을 지으며

“우리 00 이가 화가 났구나.....”

하는 것들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효과가 있는 게 이상한 방법이다.

아이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엄마에게 쇳소리를 내며 악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참아왔던 인내심은 바닥을 보였다.

절대 엄마처럼 불같이 화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것은 잊고 소리를 질렀다.

“그만 좀 하라고오!!!!”


그러고 나서 문득 정신을 차리면 잔뜩 눈치를 보는 아이들이 눈앞에 있었다.

닭똥 같은 눈물을 꾸역꾸역 참는 아이들이었다.

그럼 또 후회가 밀려오는 거다.

자책에 빠지는 거다.

한없는 우울의 구덩이에 땅을 파고 들어가고야 만다.


그러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책이 엄마마음에 관한 책이었다.

그때만 해도 육아방법에 대한 책은 많았지만 엄마 마음을 챙겨주는 책은 없었다.

그런데 육아서적이라고 산 책에서 우연히 위로를 받고만 것이다.


나는 연습하라고 적혀있는 예시를 거울을 보며 연습하기 시작했다.

“안돼. 안 되는 거야.”

“00을 하고 싶구나. 그래, 그걸 하고 싶다는 건 알아들었어.

하지만 높아서 다칠 수 있기 때문에 할 수는 없어. 대신 저건 해도 돼,”

어투는 영상을 참고해 연기하듯 연습했다.


작가에 빙의해서 말투를 연습하다 보니 한참 후에는 내 어투와 섞여 꽤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애정이 느껴지는 단호한 말투'라는 게 쉽지 않았다.

조금만 애정에 치우치면 아이는 보란 듯이 뒤집어진다.

그렇다고 단호함에 너무 집중하면 아이는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거절만 받게 된다.

그러면 또 뒤집어지거나 아예 입을 닫는다.


말투를 충분히 연습한 후로 아이들이 흥분했을 때 말만으로 진정시키는 게 점점 가능해졌다.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된 것이다.

연습의 결과에 취할 틈도 없이 아이들은 내 방법이 익숙해지자 또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다정한 말로도 단호한 말로도 달래 봤자 그대로였다.


그때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 스스로 진정하는 것도 필요하겠구나.’

나는 아이의 행동을 고치려 했지, 스스로 설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는 경우에 따라 달래기보다 기다림을 선택했다.

“기다릴게. 진정하고 와서 다 말해줘. 들을게.”

단호하기보다 다정함에 조금 더 기울어진 말투다.

처음에는 ‘기다리다’가 ‘저리 가서 혼자 울다 오라’고 오해하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씩 ‘엄마의 기다림’의 뜻을 알아듣게 설명했다.

“엄마는 네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
그런데 울면서 하는 말은 잘 들리지 않아.
진정하고 이야기해 주면 끝까지 들을게(그렇다고 다 된다는 건 아니다).”

진실로 이 마음을 갖고 말을 하니 말투는 자연스럽게 단호하면서도 다정한 그 애매함에 알맞게 바뀌었다.


아이에게 심호흡하는 방법도 알려주고 두 손을 잡고 곁에서 끝까지 기다리는 날이 반복됐다.

어느새 아이는 순간 울면서 뒤집어지려다가도 심호흡을 하고 심박수가 가라앉으면 말을 시작했다.

나는 얼마나 길든 상관없이 아이의 말을 전부 다 들었다.

절대 중간에 끊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내 생각을 짧게 전달하고 이야기를 들은 아이의 생각을 물었다.

그렇게 ‘대화’로 문제가 해결가능하다는 것을 아이는 몸에 익히게 됐다.


그러면 엄마만 기다리면 다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가.

그건 결코 아니다.

엄마의 기다림은 아이에게 좋은 예가 된다.

아이는 기다림으로 인해 자신의 부정적 감정이 해결되는 경험을 반복했다.

그래서 엄마가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반대로 ‘기다리는’ 연습을 했다.


저녁밥을 기다리는 어린 동생이 있는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큰 애를 기다릴 순 없었다.

보통 그 지점에서 다시 와르르 결심이 무너지고 실수가 뒤따른다.

그때 아이도 엄마를 기다리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황은 이해되게끔 설명하고 언제 기다림이 끝날 지를 미리 안내했다.


아이는 어리다.

얘기를 했어도 재촉하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조금 단호함을 5% 올려서 말했다.

“엄마는 네 이야기를 얼른 듣고 싶지만 지금은 이게 더 급해서 이것 먼저 해야 해.

00 이는 엄마를 기다려야 하는 거야. 기다려.”

앞에 말했듯이 단호함 5%다. 냉정함 5%가 아니다.

역시 반복된 갈등과 해결이 연습이 되어 아이들은 이제 자신이 기다려야 할 때와

엄마의 기다림이라는 배려를 받아야 하는 때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이제는 반대입장이 되는 경우도 많다.

“엄마, 지금 나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조금만 생각하고 올 테니 그때까진 기다려주세요.”

라거나

“엄마, 나 다 울고 올게요. 기다려주세요.”

조금 더 막내버전으로는

“엄마 지금은 말로 못하겠어요.

잠시만 안아주세요. 눈물 그치고 말할게요.”

같은 요청도 종종 듣는다.


기다림

때로 인내심과 비슷하게 쓰이는 단어 같지만 조금 다르다.

인내심은 뭔가 하고 싶은데 참고 견디는 느낌이라면

기다림은 그냥 내 시간을 갖는 잠깐의 여유시간이랄까?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기다림은 서로의 관계에 큰 변화를 갖고 왔다.


나는 ‘기다리는 엄마’가 되어 아이의 신뢰를 받았다.

나는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이 스스로 가진 힘을 더 믿게 되었다.



※ 아이를 키우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릴 때 얼른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하지만 빠른 방법과 옳은 방법 중 우리는 옳은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빠른 방법은 그 순간을 넘길 뿐이다.
옳은 방법은 아이의 마음에 닿는다.
돌아보면, 기다림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서로 존중하는 동등한 사람으로 대화가 가능하게 된다.

기다리자. 기다림을 가르치자.

삶이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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