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거나 스스로 하거나'
나는 결혼 초반까지 아동 미술학원 담임으로 일했다.
오후 늦게 오는 중고등이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초등학생과 6,7세인 50여 명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미술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내 기준이 거진 잡혀갈 때쯤이었다.
나는 조금씩 알아채고 있었다.
미술학원 밖의 일반적인 일과가 대체로 부모의 일방적인 결정이란 것을 말이다.
그때 만난 다양한 아이들에게서 보인 공통점과 특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나는 부모로서 가져야 하는 삶의 방향을 알게 되었다.
남들이 ‘그래야만 한다.’하는 것들 중엔 ‘그럴 필요 없는 것’ 뿐만 아니라 ‘그래서는 안 되는 것’들도 많았다.
예를 들면 영어유치원에 안 가면 큰일 날 것처럼 말하는 부모님이나
남들 앞에서 우리 애만 없으면 안 되니까 핸드폰이나 게임기기를 사준다는 부모님 말이다.
은근슬쩍 친구보다 성적이 앞서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담긴 흔한 멘트들도 나에겐 조심해야 하는 포인트였다.
첫째가 태어난 후로도 나는 다른 길이 있는 줄 몰랐다.
당시 나는 다른 부모들의 부추김에도 자신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었다.
아주 가까운 사람들조차 부모 역할에 대한 내 기준을 환영하지 않았다.
나는 성적에 연연하지 않겠다거나 아이가 본인의 속도로 크도록 응원하고 돕고 격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나는 공교육에 들어가 ‘버티는’ 부모가 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았다.
새로운 길을 알게 된 것이다.
대안교육이었다.
첫애가 초등학생이 되기까지 몇 년을 대안교육은 내 선택지 안에 굳건하게 자리 잡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버티거나 아이의 속도를 무시한 채 ‘남들처럼’ 달리라는 주변의 괴변을 쉬이 넘길 수 있었다.
선택의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타인의 의견보다 아이와 우리 부부에 집중해서 점차 구체적으로 방향을 잡아갔다.
우리의 선택은 대안학교 입학이었다.
대안학교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아이가 가진 ‘스스로‘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교사의 개입은 안전을 위한 최소함 만이었다.
아이들은 부딪힘이 생길 때 평소 배운 것을 토대로 스스로 생각을 말하며 조율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실수해도 잘못한 것이라기보다 배워야 할 것이라고 배웠다.
한걸음 성장하는 방향으로 아이들은 어른들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그저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또 한 가지는 ‘함께’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먹는 것부터 경험과 기회, 마음도 모두 함께 했다.
학교에서 매해 떠나는 여행의 힘든 상황도 함께라서 이겨냈다.
어려움이 닥칠 때 혼자 무너지기보다 함께 버텨내며 아이들은 성장했다.
내 아이만이 아니라 함께 크는 모든 아이들이 내 새끼였다.
6년의 초등을 수료하고 나서 첫 애는 같은 학교 중등과정을 시작했다.
여기에서 초등과정 중 영어는 공부라기보다 ‘만남’ 정도로 다룬다.
내가 좋아하는 점 중 하나다.
6년 동안 제. 대.로. 놀며 큰 아이는 중등을 앞두고 여러 다짐을 했다.
그리고 중등이 시작되자마자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했다.
모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알고자 했다.
실수를 통해 무엇을 배울지 선택했다.
친구를 기다려주고, 친구를 배려하며 대화했다.
아이는 놀면서 6년을 버린 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6년간의 대안학교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누구 건 간에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을 다 갖추었다.
배움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공고했다.
6년 전 많은 주변인들, 특히 어르신들은 우리의 결정을 나쁘게만 보았다.
사실 요즘도 한 번씩 모자람이 없는데 왜 일반학교를 보내지 않냐고 걱정하신다.
하지만, 일반학교도 부모의 선택이다.
대안학교를 부모가 선택지에 올려두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다른 교육을 찾았고 만족했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살아간다.
서로 돕고 영향을 미치며 살지만 그 안에서 자신만의 삶을 가꾸어야 한다.
공동체 안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감을 배우려면 어떤 공동체로 들어가느냐가 중요하다.
반드시 대안학교일 필요는 없다.
모든 대안학교가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같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기준, 교육 방향, 삶의 가치관의 올바름과 건강함 일 것이다.
아이는 공동체 속에서 자랐고 그 안에서 스스로 서는 법을 배웠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함께 살아가되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
내가 아이에게 바라던 모습은 처음부터 그것 하나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