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닫고 귀를 열자"
불안 불안하더니 사달이 났다.
잔소리를 많이 하면서도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남편의 지적은 꽤 오래 흘러나온다.
내용을 모아서 생각해 보면 결국 한두 가지다.
그걸 이렇게도 저렇게도 이야기하니, 아이 입장에선 ‘했던 말을 반복하는 잔소리’로만 들릴 뿐이다.
그래서 아빠가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 건지 알아채기 쉽지 않다.
우리 아빠도 참 힘든 아빠였다.
10살~14살 잠시 아빠와 살던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아빠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안달 난 막내딸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잔소리조차 잘하지 않으셨다.
그야말로 내게 관심이 없었다.
난 내 아이에겐 따스한 관심을 충분히 주겠다고 다짐했다.
남편의 성장과정도 애정 어린 관심을 받는 모습은 아니었다.
외려 잘못한 걸 지나치게 무섭게 혼나곤 했다.
남편은 불쑥불쑥 아이의 태도에 화가 나더라도 절대 화를 내지 않고 참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성장 경험을 다르게 소화했다.
나는 아이가 원하는 모양의 관심을 주는 게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주고 싶은 사랑의 모양이 아이의 필요와 맞지 않을 때 오류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럴 때 사랑은 구속이 되고 관심은 잔소리가 되어 버린다.
물론 늘 완벽하진 않다.
그럴 때 첫째는 자신의 입장과 마음을 설명해 준다.
나는 아이가 알려주는 안내에 따라 조금씩 방향을 조정한다.
내가 실수를 하거나 과하게 행동한다 싶어도 아이는 이제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아이 말에 따르면
‘엄마는 대화가 되니까.’
‘다른 생각이더라도 일단 다 들어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해 주니까.’
‘존중하는 이유는 존중받기 때문에’
라고 한다.
반면에 남편은 이 부분에 대해 나와 생각이 다르다.
해주고픈 진심 어린 마음이 여과 없이 수많은 언어로 쏟아진다.
어른의 눈엔 끝없는 잔소리 너머의 마음이 보인다.
화를 꾹 참은 목소리에서 노력하는 마음도 보인다.
그런데 상대방은 아이이다.
어른이 보이는 행동 너머의 진심을 알아서 척척 이해하지 못한다.
바로 어제, 아이는 아빠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남편의 입장도 아이의 입장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에겐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하지만 먼저 변해야 하는 건 어른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아이의 입장을 조심스레 전달했다.
내가 남편의 입장을 알고 있음도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기다림이 방치라고 느끼는 듯했다.
잔소리가 관심이라 여겼다.
아이의 태도에 화를 꾹 참기만 했다.
나의 조언은 아직 남편에게 가 닿지 않는다.
나의 경험은 남편에게 믿을만한 정보가 아니다.
나의 말은 흩뿌려진다.
2026년
작은 인간 하나는 꿈에 그리던 엄마가 되었다.
또 다른 작은 인간은 꿈에 그리던 아빠가 되어가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이 길을 혼자 걷는 일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동안 우리 집 작은 인간 셋을 관찰하며 깨달은 것은 분명하다.
작은 인간 셋은 큰 인간 둘을 키운다는 것 말이다.
권위적이지 않은 큰 인간은 권위를 갖게 되고 작은 인간들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것.
그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말이다.
마지막 회차를 다 썼다.
끝에 남은 씁쓸함은 어제, 오늘의 내가 남기고 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키우는 데 ‘상호존중’은 필수라는 말을 하고 싶다.
아이를 존중할 줄 알아야, 아이도 부모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쉽지 않았던 글을 마무리한다.
작은 인간에 대한 연구는 끝이 없을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