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아도 돼

애를 쓰다

by heyokeum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언제부터인가 어학사전을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단어들, 뜻을 모호하게만 알던 단어들이 논리적인 문장으로 또렷하게 다가오며 그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는 느낌이 신기했다.
마치 오래된 친구의 속마음을 뒤늦게 알게 된 듯한 이미 알고 있던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일은 작은 기쁨이자 은근한 설렘처럼 다가왔다.


애를 쓰다.
초조한 마음속
몹시 수고로움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애를 쓰며 살고 있을까.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무엇을 잃지 않으려고 혹은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온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며 열심히 살고 있지만 그 애씀 속에서 정작 자신은 자꾸만 뒷전으로 밀려나고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안식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새로운 환경을 찾아 하노이까지 왔지만 이곳에서도 또다시 무언가를 시작하려 애를 쓰고 무언가를 잊으려 애를 쓰고 무언가를 고쳐보려 애를 쓰며 이렇게 애는 습관처럼 내 삶을 감싸고 있었다.


정체성(identity).
오랫동안 잊고 지낸 단어였다.
정체성이란 결국 내가 누구인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다.
그러나 삶 속에서 나는 그 질문을 자주 외면했고 오랫동안 내 취향과 남의 취향을 구분하지 못한 채 화려해 보이는 타인의 삶을 빌려 마치 내 것인 양 착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은 그저 남의 삶을 흉내 낼 때가 아니라 나다운 순간에 찾아온다는 것을 말이다.

책장을 넘길 때, 전시장에서 미적인 빛이 스며드는 순간을 바라볼 때, 오래된 빈티지 가구의 질감에 손끝이 멈춰 설 때, 혹은 시원한 맥주 한 모금에 웃음이 터질 때 그런 찰나마다 나는 깨닫는다. 나의 정체성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내가 두근거리는 순간에 숨어 있다는 것을.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존재하기 위해 애쓰라’고 말했다.
타인의 삶을 소유하려 애쓰지 말고 나로 존재하기 위해 애쓰라는 뜻으로 이제 인생의 절반을 지나온 지금, 내가 진정으로 애써야 하는 일은 성공이나 성취가 아니라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십 이후의 삶은 그래서 다르다.
애를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은 놓아버리고 애를 써야만 하는 일에 온 마음을 쏟는다. 그것은 곧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무엇을 즐기는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찾아가는 길이다.

나는 지금,
그 길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 길이야말로 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믿는다.

# 애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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