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할, 받을 준비
요즘 내 카톡은 그야말로 정적이다.
나를 궁금해하는 이도 내가 궁금해하는 이도 없는 정막하고 고요한 시간들.
이 시간은 마치 깊은 밤 모든 파장이 소멸한 시간처럼 마음속 시계추마저 멈춰버린 듯 묵직하고 가라앉는 시간처럼 나를 궁금해하는 시선도 내가 찾아 헤매는 목소리도 닿지 않는 곳인 것처럼 그렇게 깊게 내게 찾아왔다.
또한 나라는 존재가 세상의 모든 소리와 사물과 풍경을 새롭게 받아들이면서 이 고요함은 외로움이라기보다 스스로에게만 허락된 섬세한 고요 같은 시간이었다.
처음엔 이 시간이 공허하고 조금은 우울하게 다가왔다. 사람들과 주고받는 대화가 줄어드니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쓸데없는 말들로 채워지던 톡과 의미 없는 대화가 사실은 내 시간을 좀먹고 빼앗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조금씩 그 시간을 줄여보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친구 목록을 정리해 보았는데
프로필 사진을 봐도 누가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 오랜 시간 연락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각종 그룹채팅이나 주문톡들..
너무도 많은 쓸데없는 톡들이 쌓여있었다.
‘굳이 내 일상을 보여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에 하나둘씩 멀티 프로필 설정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문득 눈에 띈 한 사람이 있었고
아무런 사진도 정보도 없는 빈 프로필을 본 순간
‘어? 왜 이 사람은 아무것도 없지?’ 싶었는데 이내 깨닫게 되었다.
아, 나 역시 멀티 프로필 설정을 당한 것이구나.. 그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처음엔 조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라고 왜 그런 설정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하며 오히려 그 사람이 나를 특별히 제외시켰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젠 굳이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았고 또한 이유가 있다 한들 이젠 알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어떤 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다. 요즘은 개인 프로필을 정말 친한 사람들에게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기본 프로필로 숨겨두는 것이 대세라고.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설정 때문에 상처받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제외되었다는 사실 하나로 마음이 흔들리고 괜히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 현상을 곱씹어보니 두 가지가 떠올랐다.
첫째, 굳이 상대의 마음을 알 필요가 없는데 알아버린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누군가 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직접 싸우거나 티가 나지 않으면 알 수 없었는데 지금은 버튼 하나, 설정 하나로 그 마음을 읽게 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관계 속에서 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남의 선택에 상처받기보다는 내가 나를 위해 스스로 관계를 정리하고 손절하는 편이 훨씬 건강하기 때문이다.
차단을 당하든 멀티 프로필 설정을 당하든 거기에 집착할 필요는 없고 중요한 건 내가 주체가 되어 그들을 차단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느냐는 것이다. 감정이 수동적이냐 능동적이냐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누군가에게 당했다는 피해의식에 매달리는 순간 나는 쉽게 흔들리고 상처받는다. 하지만 ‘나는 나를 위해 정리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관계는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인간관계는 억지로 붙잡는다고 해서 깊어지지 않는다. 억지스러운 연결은 결국 더 큰 피로와 상처로 돌아올 뿐이다. 관계의 주도권을 내 손에 두고 불필요한 연결을 차단하는 것. 그 자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이자 성숙의 과정이다.
이제는 안다. 카톡창이 조용하다고 해서 외로운 것이 아니며 프로필 하나로 나를 평가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오히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더 단단해지고 있다.
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힘. 그것이야말로 내가 차단을 준비하며 얻게 된 가장 큰 선물이다.
살다 보면 알게 된다.
모든 만남이 선물은 아니고 어떤 이별은 오히려 축복이라는 것을.
쓸데없는 인간관계를 차단하면서 내가 얻은 건 ‘잃음’이 아니라 ‘되찾음’이고 불필요한 만남에 빼앗기던 시간을 되찾고 눈치 보며 소모하던 에너지를 돌려받았으며
무엇보다 내 삶의 주도권과 마음의 평온을 다시 손에 쥐게 되었다.
관계의 수가 많다고 해서 삶이 풍요로워지는 건 아니다.
깊이 있는 몇 사람과 나누는 대화가 수십 명과 얕게 스치는 관계보다 훨씬 더 내 삶을 단단하게 한다.
“좋은 인간관계는 숫자가 아니라 깊이가 만든다.”
라는 이 말처럼 남는 사람은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내 곁에 남는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내 곁에 남은 사람들과 더 깊이 웃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