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살 금쪽이의 출현

내가 나의 엄마가 되어 줄게

by heyokeum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지난 20년,
내가 가장 자부할 수 있는 건 나름 딸들과 참 잘 지내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사소한 일상부터 마음 깊은 곳의 속내까지 늘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때로는 의견이 부딪히기도 했지만 끝내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로 다시금 다정한 자리로 돌아왔다.
그 덕분에 갈등은 상처로 남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를 더 단단히 묶어주는 끈이 되었으며 서로가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 질풍노도의 사춘기조차 특별한 폭풍으로 스쳐가지 않았고 마치 강물이 흐르듯 조용히 소리 없이 지나가 버린 듯했다.
나는 그때마다 생각했다.
“내가 엄마로 살아온 이 시간은 참 잘해온 것 같아.”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노력만큼은 최선을 다했고 그 마음을 딸들이 알아주고 받아주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엄마라는 자리는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자리를 지키며 내 인생 최고의 동반자들을 얻었고 딸들과 함께여서 나는 더 단단해졌고 더 따뜻해졌고 갈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더 깊어질 것이므로 인생에서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그런데 행복과 별개로 한편엔 늘 이유 없는 우울감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을 키운 이야기는 끝도 없이 할 수 있는데 정작 나 자신을 키운 이야기를 꺼내려하면 목소리가 잦아들고 마음이 잠잠해졌다.
내가 좋은 엄마로 지내는 데는 충실했지만 정작 ‘나’를 돌보는 일에는 서툴렀던 것일까.

이런 감정에 치우치다 보면 때때로 가끔 내 안의 금쪽이가 불쑥 고개를 내밀곤 했다.
일하고 싶고, 학부모의 틀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향유하며 성취감을 맛보는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진취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내 안의 성장호르몬을 깨우고 싶다고 가슴을 톡톡 건드리면서.

하지만 오랜만에 나간 술자리는 늘 같은 풍경이었다.
“누구 애가 이랬대.”
“그 엄마는 또 그랬대.”
기승전 교육 이야기로 끝나는 소모적인 자리뿐이었고
그런 시간 속에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바쁘게 살아가느라 늘 그 아이의 목소리는 늘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자신 있었던 내가 이제는 내 안의 금쪽이를 키워볼 때가 되었구나.
내 안의 작게 웅크리고 있는 금쪽이에게 서서히 기지개를 켜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이들을 키운 내가 이제는 내 안의 아이를 키울 차례라고.

그때 내 안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이제 나 좀 키워줘.
큰애 키우느라 엄마 20년 했으니 이제는 내 이야기도 들어줘.”

나는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 이제 내가 나의 엄마가 되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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