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살 금쪽이#1
나이가 들면 저절로 마음이 단단해지고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렇다고 믿었다.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불필요한 경쟁에서 한 발 물러나며 나만의 속도를 찾으면서 “나도 드디어 철이 들었구나” 하는 안도감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뜻밖의 순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오금이’는 다시 고개를 들곤 한다.
어떤 환경, 어떤 사람은 여전히 나를 자극하고 내 안의 열등감과 피해의식은 잠잠했다가도 불쑥 튀어나와 나를 한순간에 낯설고 부끄럽게 만든다.
그럴 때의 나는 의식적으로라도 더 당당한 척 더 행복한 척을 하려 했으며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니라 과장된 포장지를 둘러 상대의 눈에 비치길 바랐다. 마치 조금이라도 화려해 보이면 내 부족함이 감춰질 것처럼.
하지만 그 모든 시도가 결국은 불안과 결핍을 드러내는 방증임을 알면서도 순간순간 반복되는 이 패턴을 피하지 못했다.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의 허세와 과시, 그리고 갑질 같은 모습 뒤에는 언제나 감추고 싶은 초라한 내면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감당하기 힘든 결핍을 숨기기 위해 정반대의 옷을 입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철저한 열등감, 사소한 질투, ‘저 사람은 나보다 잘난 게 없는데’라는 불평등을 인정하지 못한 마음은 나를 더욱더 불안하고 가볍고 속이 좁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앞서 있는 모습을 보면 끝도 없이 깎아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렇지만 난 변했고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고 내가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환경이 바뀌었고 자극할 대상이 내 곁에 없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다시 마주친 내 모습은 더 부끄러웠다. 그토록 남을 의식하며 끝내 나 스스로를 갉아먹는 모습이.
그러다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바라는 행위는 곧 내가 그것을 갖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룬 것’에 시선을 두는 일이며 결핍에 초점을 맞추면 끝없는 부족과 비교에 빠질 수밖에 없지만 이미 이루어낸 것에 집중한다면 비로소 여유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유야말로 사람을 품격 있게 만들어 주며 중요하지 않는 것을 버리고 기꺼이 신경을 쓸 그것을 찾을 수 있는데 시선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는 숫자가 아니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하지만 나이가 주는 선물도 분명히 있다. 20대나 30대에는 보지 못했던 나의 민낯을 이제는 조금 더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왜 아직도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자책하기보다는 “이 또한 내 안의 한 부분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야말로 성숙함이 아닐까.
나는 아직도 이루고 싶은 것이 많다. 하지만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 나는 이미 이룬 것들 위에 서 있고 그 사실을 잊지 않으며 결핍이 아닌 충족의 자리에서 나를 바라본다면 누군가를 향한 질투 대신 여유를 열등감 대신 품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짐한다.
앞으로는 이루어진 사람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고, 살아가자고.
그 여유가 결국 나를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성장시켜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