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날 위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오십 살 금쪽이#2

by heyokeum


오십이 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많나고 수많은 인연이 스쳐갔다.
상대가 날 맞추기 위해 애를 쓰는 것도 보았고 내가 상대에게 스며들기 위해 노력을 한 적도 있었다.

인간관계에는 묘한 계절이 있다.
첫 만남은 늘 햇살이 따사롭고 설레는 봄날처럼 시작된다. 서로의 단점, 결핍 따윈 보지도 않은 채 장점만 크게 보이며 참 괜찮고 좋은 사람 투성인 그 시절은 흔히 말하는 관계의 허니문 시절이다.

인간은 누구나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애를 쓰지만 봄이 오래가지 않듯 그 시간도 오래 머물지 않으며 시간이 지나면 감춰졌던 본모습이 드러난다.
말투, 습관, 가치관이 차츰 드러나면서 실망이 찾아오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기대가 무너지며 익숙함 속에서 갈등이 잦아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관계는 두 갈래 길을 맞는다. 실망을 넘어 연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시절인연으로 놓아줄 것인가.
관계의 껍질이 벗겨지는 순간이다.

그들은 말한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
“너를 아껴서 하는 말이야.”

그러나 그런 말로 시작된 충고에서 진심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위함이라는 포장은 수려하고 화려했지만 결국 그 말은 상대가 하고 싶었던 말에 지나지 않았고 내 아킬레스건을 정면으로 찌르면서도 ‘너를 위한다’는 말로 자신을 보기 좋게 합리화했다.
집안환경 자체가 워낙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이었다는 걸 잊기도 하고 우연히 만나 친절한 사람이면 좋은 사람이라 착각도 하고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기분 좋게 다가오면서 사람들을 이용해 물건을 팔 사람이라는 걸 모르고( 아니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 것일 뿐)
그렇게 그들은 나에게 가지각색으로 서툰 인연을 만들고 또 상처를 주고 떠났다.

하지만 사실문제는 상대보다 내 안에 있었다.

나조차도 인정하지 않은 콤플렉스를 꾹꾹 숨기고 그 위에 번듯한 포장을 덧씌우며 살아왔기 때문에 누군가의 말이 너무도 쉽게 날 상처 주고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돌아보면 알게 된다.
진짜 관계는 따로 있다는 것을.
조건이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인연.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비난하지 않고 위해주는 척이 아니라 진심으로 위하는
그런 관계.
인간관계는 결국 계절을 닮았다.
만남의 봄이 있고, 익숙함의 여름이 있으며, 서서히 식어가는 가을과 멀어짐의 겨울이 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거스를 수 없듯 관계의 흐름도 억지로 붙잡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일이고 결국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난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고슴도치와 같다. 추위를 피하려 서로 가까이 다가가지만, 너무 가까우면 서로를 상처 입힌다.”

관계는 결국 거리의 예술이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그 적당한 거리를 지켜낼 때 비로소 오래 남는다.

그리고 오십이 된 지금,

나는 그 거리의 감각을 조금은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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