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로 입시수발러
한국 사회에는 묘한 공식이 있다.
특정 지역 이름만 붙여도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버리는 것.
‘강남엄마, 서초맘, 청담언니…’ 이런 네이밍은 마치 암묵적인 계급장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끌어당긴다.
그 안에는 단순한 지명이 아닌, 그곳이 지닌 이미지와 뉘앙스, 그리고 그에 얽힌 가치가 고스란히 스며 있기 때문이다.
나도 10년을 그곳에 살며 자기 과잉, 자기 포장, 자기 방어를 하는 다양한 모습에 엄마들을 만났고 나 또한 이런 단어들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시시때때로 변화하고 적응하면서 살았었다.
아주 여유 있게 삶을 누리면서 자식을 키우는 사람부터 강남에 살기만 할 뿐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다리 찢어지는 격으로 무늬만 강남에 살면서 열심히 학부모들과 어울리고 그 관계들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봐왔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에 대한 질투와 시기, 은근한 멸시와 깎아내림의 이중적인 태도로 현실에 대한 과잉비교에 짓눌려 있었다.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강남에서 아이를 키우며 엄마라는 이름이 아닌 학부모로서 시작된 인생 2막은 생각보다 훨씬 치열했고 훨씬 외로웠다.
좋은 학원 좋은 점수 원하는 대학 이 세 글자가 우리 가족의 하루를 움직였고
이 모든 것이 아이를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안에는 나도 함께 경쟁을 하고 있었고 비교는 아이만 향해 있지 않았다.
아이 성적과 결과가 곧 엄마로서의 내 존재감이었다. 치열하게 프로 입시수발러를 자처하며 살았던 그 시간이 끝나고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나서 알았다.
그 긴 마라톤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 자리에 깊은 두려움과 불안이 더 크게 남아있었다는 걸.
그동안 전쟁 같은 입시지옥에서 아이를 지키려 달려왔다고 믿었지만
진실은 그 과정 속에서 내 삶을 송두리째 바쳐버렸다는 걸.
인생 전체를 하나의 목표에 걸어놓고 달린 결과, 남은 건 만족의 기쁨보다 깊은 허무였다.
강남에서 산 10년은 화려한 전광판 같았고 끝없이 반짝이지만 정작 내 그림자를 더 짙게 드리우는 빛.
그 안에서 나는 ‘엄마’가 아니라 ‘누구의 학부모’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했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내려온 지금, 나는 묻고 있다.
“나는 이제, 내 이름으로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