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라는 나이가 주는 의미
요즘은 다들 나이를 잊고 살라고 한다. 과거엔 50세면 ‘중년의 끝, 노년 시작’으로 여겼지만
지금의 현재 50세는 예전 3-40대의 비슷한 에너지와 사회적 위치로 여긴다는 김미경 선생님의 말씀처럼 나이 오십이 주는 정서적인 공감이나 사회적 의미는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 한 많이 달라진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런 세태는 나에겐 먼 남의 얘기였고 내가 느끼는 오십이라는 나이의 체감온도는 너무도 오묘하고 복잡하고 심란했다. 말로만 듣던 갱년기의 시작은 마치 몸과 마음이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야 하는 오래된 집처럼 말을 안 들었고 갑자기 전등이 깜빡깜빡하고 보일러가 혼자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다 과열되는 것처럼 감정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롤러코스터를 탄 듯했다.
오십이라는 나이는 인생에서 어떤 의미일까..? 오십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면 수십 권이고 다들 오십을 맞이하며 하겠다는 일들도 수만 가지이다. 나 또한 오십을 그냥 지나 칠 수 없어 이리 안식년을 보내러 훌쩍 떠나버렸으니..
왜 오십이란 나이에 사람들은 집착하는 걸까.
아마도 쉰은 불안과 여유가 공존하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순간순간 마음은 요동치고, 어떤 선택에 대한 후회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가도, 그토록 집착하던 것들을 언제 그랬냐는 듯 놓아버리고 태연해지는 시기. ‘괜찮은 척’이 아니라, 진짜로 괜찮아버리는 것. 삼사십 대에 온 힘을 다해 매달렸던 것들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고, 그래봤으니 이제는 놓을 수 있다는 걸 깨닫는 나이.
만약 다른 선택들을 하고 살았다면 지금보다 조금 다른 쉰은 가능했을까.
남이 아닌 나를 돌보고, 나를 향해 더한 애정 어린 시선을 쏟아왔다면 더 풍요로운 쉰을 맞이했을까. 아니다. 진짜 치유는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반복적으로 다시 쓰기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기에 쉰 해 동안 내가 이룬 것들과 앞으로 이룰 것들을 조율하고 조합하여, 남은 날들을 대비하는 것. 어쩌면 쉰이란 나이의 의미는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