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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에겐 테마주가 있고 건설일엔 데마주가 있다.

초보형틀목수의 노가다 생존기 #5

by 엔돌핀
테마주와 데마주


획 하나의 차이지만 의미는 하늘과 땅차이이다. 그리고 두 단어는 라임만 비슷할 뿐 비교대상은 아니긴 하다. 그냥 내가 만들어낸 언어유희다.


주알못인 나에겐 주식관련한 용어 자체가 딴 나라 얘기지만 테마주는 포털에서 왕왕 본 익숙한 단어다.

특히 대선시기가 되면 정치인테마주(해당 정치인이 내세우는 정책과 관련하여 이익을 얻게 되는 주식)가 후보자의 지지율과 세트로 같이 거론되곤 했던 기억이 있다.


테마주는 오를수록 주식투자자 입장에선 기분이 좋지만, 데마는 길어질수록 노동자들은 울상을 넘어 근심걱정에 밤잠을 이룰 수 없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을 할 수 없는 날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선 이를 '데마 맞는다', '데마'라고 표현을 한다. 아직 1년 미만의 경력이긴 하지만 올해 여름부터 겨울까지 일하면서 여러 번의 데마가 있었다. 대부분은 날씨의 영향이 크고, 작업 공정이 안 맞아 발생하는 데마가 있다. 예전에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장마나 폭설 때는 손님들이 많이 안 온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었다. 그런데 서는 위치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는 말처럼, 건설일을 하면서는 비와 눈이 생계 위협으로 다가오니 더더욱 싫어졌다.


데마 : 일거리가 없어 쉬는 걸 건설현장에서는 '데마 맞는다'라고 표현한다. 비슷한 뜻의 일본어 てまち(데마찌, 작업 시간 중 일거리가 없어 손 놓은 상태)에서 파생됐다고 한다. 건설현장의 용어는 아직까지 일본어가 대부분이다.


비가 아예 종일 와서 출근 자체를 안 하는 날이면 오히려 낫다. 가다, 일다오 등의 어플을 통해 다른 건설일(실내에서 하는)을 찾아서 하루 일을 하면 된다. 목수 일당만큼은 아니어도 하루 일당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마기간에도 하루종일 비가 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기 예보에 비가 안 잡혀 있으면 일단 출근을 한다. 그런데 지하철에 내려 현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불안한 기분이 엄습해 온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작업 대기를 하다 비가 안 그치면 퇴근을 한다. 그날 하루 공수(일당)는 0이다.


* 공수는 쉽게 말해 하루치 임금을 말한다.
1 공수 : 아침 7시~오후 5시(하루 일당*1)
1.5 공수 : 아침 7시~저녁 7시(하루 일당*1.5)
2 공수 : 아침 7시~저녁 9시(하루 일당*2)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퇴근을 한다. 기분이 묘하다.

주 6일을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에게 어찌 보면 이렇게 하루 강제적으로 일을 못하게 되는 날은 휴식으로 생각하고 쉴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그런 시간을 활용해 집안일도 하고 병원도 가고 밀린 일도 하면서 쉰다.


하지만 고정지출이 많으면 쉬는 날이 많아질수록 걱정이 앞선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뭐라도 찾아서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밀려온다. 하루 일당이 15만 원이라고 하면 5일만 일을 못해도 그달의 급여는 75만 원이 줄어든다. 생계가 들쭉날쭉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건설노동자들은 일할 수 있을 때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지난 현장에서는 주 7일 일을 했을 때도 있었다. 쉬고 싶으면 미리 말하고 쉬라고 하지만 언제 일이 없을지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은 출근을 한다.


나도 이런저런 이유로 현장 출근을 못하게 되면 전날부터 어플을 통해 일자리 지원을 넣는다. 하지만 이것도 꾸준히 같은 현장에 출근해야 뽑힐 확률이 높다 보니 대부분 지원탈락을 한다. 그러면 새벽시간에 혹시 모를 취소자 때문에 급하게 구하는 일자리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밤잠 설치며 어플을 켰다 껐다 한다. 그러다 하나라도 있어서 지원해서 확정되면 일을 하는 거고, 이마저도 없으면 그날은 공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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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 사회


한창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기본소득 공약이 화두가 되던 때가 있었다. 국민들 모두가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을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 사회적 안전망이 촘촘히 갖춰져 생활고로 국민들이 목숨을 끊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본소득은 매력적인 정책이었고, 나 또한 그런 사회가 실현되길 누구보다 바랐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고 국민들이 고물가, 고금리, 저임금에 숨이 턱 막히고 투잡, 쓰리잡을 넘어 무지출 챌린지까지 하며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하는 현실은 인간지옥이 따로 없을 지경이다.


건설현장도 다르지 않다. 나라경제가 안 좋으니 건설경기도 당연 안 좋은 혹한기이다. 거기다 윤석열정권의 노조탄압에 일생 건설일을 해온 내국인 노동자은 일터에서 밀려나고 외국인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내가 일하는 현장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엄청 많다. 가끔 내가 해외에 나와서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외국인노동자들의 불법채용이 문제가 되자 이를 근절하려고 하지 않고, 불법채용의 근거가 되는 비자문제를 풀어 합법적으로 외국인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값싼 임금으로 외국인들을 채용하니 내국인 노동자들의 임금도 삭감하려고 한다. 노동환경은 열악해지고 그러다 보니 젊은 층의 건설업 유입은 거의 0에 수렴한다고 할 수 있다. 내국인 고용이 줄어드니 내수경제에도 악영향이다. 악순환의 연속을 끊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과 대책이 필요하다. 그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더 구체적으로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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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바람이 있다면 데마 걱정 없이, 일자리 걱정 없이 안전하게 일하는 게 제일 소원이다.

몸은 비록 고되지만 내 이웃이 살 집을 짓는다는 보람과 긍지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건설노동자들의 안녕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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