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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돌핀 Jul 16. 2021

공부 못한게 너무 후회다

평생 고생만 하신 엄마의 이야기를 담다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지금도 속상한 시간들이 기억에 난다.

그 중 하나가 학교 담임이 써오라고 준 가족관계 인적사항 적는거에 부모님 직업, 최종학력 등을 쓰는거였다.

우리 엄마도, 아빠도 초등학교만 나왔다. 아, 그 때는 국민학교다.

나는 부모님의 최종학력에 국민학교를 쓰는게 참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종이를 학교에 내는것도 참 싫었다. 지금의 차별금지법이 이런 감정을 방지해주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왜 우리 부모님은 국민학교만 졸업을 하고 평생을 일만 하셨을까?

엄마도 아빠도 형제 중에 둘째다. 아빠는 어렸을때부터 할아버지를 따라 산에 들에가서 나무를 하고, 소 먹일 풀을 베어오고 하는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우리 아빠라고 왜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큰고모 다음으로 태어난 아빠는 가난의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고 강요아닌 강요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숙명이라 생각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였을지도.


얼마 전 시골에 있는 엄마랑 통화를 하다가 물었다.

엄마는 후회를 안하냐고. 좀 더 공부하고 싶지 않았냐고 말이다. 그리고 들려오는 엄마의 말에 난 참 마음이 아팠다. 


나도 더 배우고 싶었다, 공부를 안시켜 준게 너무 원망스럽다

우리 엄마도 둘째다. 큰외삼촌과 우리 엄마만 국민학교까지만 나오고 그 아래로는 고등학교까지는 다 보냈다. 어려서부터 일을 해야했던 엄마는 동생들이 학교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우리 엄만 무슨 꿈을 꾸고 살았을까? 꿈꾸는거 자체를 사치라 생각하고 그냥 일손 하나 더 보태기 위해 일하느라 바쁘게만 살아온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가난이 싫고, 부모님의 최종학업란에 국민학교라고 쓰는 그 상황이 너무 싫었던 철없던 내 청소년기 시절이 지금에 와서 너무 부끄럽고 죄송했다. 우리엄마, 아빠가 더 학업에 정진할 수 있었다면 어떤 꿈을 꿨을까? 어떤 삶을 살고싶었을까? 부모님의 기억속엔 학창시절의 기억이 많지 않다. 너무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말이다. 남들처럼 학교 친구들과 같이 꺄르르 웃기도 하고, 서로의 꿈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고 그런 시간들을 엄마도 얼마나 누려보고 싶었을지 엄마와의 통화를 통해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가 있었다.


요즘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엄마의 꿈, 엄마의 삶을 알아가는 대화를 많이 하고 있다.

우리 엄마도 수다가 참 많은 사람인데, 집에선 말할 일이 거의 없다. 아빠는 무뚝뚝함을 넘어 봉건시대 농촌 남자처럼 말도 없고, 말도 많이 안하신다. 통화를 길게하는것도 싫어하실정도다. 반면 엄마는 한번 통화를 하다가 수다가 터지면 멈출 줄 모른다. 에너지도 강하고 밝다. 엄마의 강한 에너지와 밝음을 내가 물려받은거 같다. 일주일에 몇번이지만 엄마와의 수다가 기다려지고, 엄마도 또 그러지 않을까 싶다. 난 그 수다를 엄마의 삶을 듣는 시간으로 가져가보려고 한다.


고등학교때부터 객지 생활을 시작해서 부모님과 같이 오랜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어렸을때도 부모님은 농사일로 바쁘고, 나는 공부하느라 바빴다. 부모님의 삶을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고, 그런 분위기도 아니였다. 각자 살기 바빴다고 할까. 늦은 시작이긴 하지만,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오래오래 기억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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