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이용하는 한두시간 내외의 출장이 많아지다 보니, 오고 가는 길에 핸드폰에 영화나 드라마를 다운로드 받아서 보고 있습니다. 바쁘게 정신없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루 하루를 보내다 보니 잠시라도 아무생각 없이 쉬고 싶은 마음에 주로 주인공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반전의 찝찝한 여운을 남기지 않는 프랜차이즈 할리우드 시리즈 영화를 주로 보게 됩니다.
수십년째 같은 스파이 역할을 하느라 직장인이 느끼는 매너리즘을 느낄법도 한 반백살의 그분은 여전히 어딘가에 숨어서 다른 사람의 얼굴과 꼭 같은 마스크를 쓰고, 강물에 빠지고, 총을 쏘고, 빌딩 사이를 넘어 다니고, 테러리스트가 숨겨 놓은 폭탄을 찾아서 해체하고 있었습니다.
공항에 숨겨진 폭탄을 수십초 안에 해결하지 못하는 긴박한 순간에 수수께끼를 풀어 카운트다운이 0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문제가 해결 됩니다. 절체절명의 긴박한 장면인데, 결국 해결될 것을 알기에 두근거리지는 않았지만, 식상한 장면을 새로운 폭탄의 종류와 해결 방식으로 만들어 낸 제작진과 또 다시 해결한 주인공의 한결같은 성실함에 감탄하며 그 장면을 지나쳤습니다.
언젠가 부터 회사 업무의 ON / OFF 가 힘들어 지고, 출근과 퇴근이 뒤섞이고 있는것 같은 느낌입니다. 코로나 이후로 재택근무가 생겨나고, 언제 어디서나 업무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온 세계가 노력한 결과 생겨난 여러 업무의 도구들 덕분에 사무실과 사무실이 아닌 공간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던 일들이 마구잡이로 수시로 쏟아져 내립니다. 상호간의 업무 상황과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향의 업무 요청과 문의 사항들 속에서 채워도 채워지지 않은 항아리에 물을 길어 나르는 전래동화속 소녀의 암담함을 느낄때가 많지만, 그래도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수많은 인명의 생사를 책임져야 하는 막중하고도 심각한 문제가 아님에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늦어도, 조금 실수해도 괜찮아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루를 견녀낼 힘을 얻습니다.
사실 사건의 정도와 영향력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 다를뿐, 우리의 일상은 충분히 영화속의 슈퍼히어로와 견줄만한 아슬아슬한 긴박감으로 가득차 있는것 같습니다. 명확하게 무엇이 적인지 알 수 있고,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영화와 달리, 현실속에서는 도대체 누가 적인지 알 수 없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최첨단 과학기술과 박사님이 신박한 무기와 도구들로 주인공을 도와주는 영화와 달리 일상에서 나에게 주어진 무기는 고작 노트북 하나 밖에 없고, 주인공과 생사 고락을 같이 하는 파이팅 넘치는 동료가 있는 영화와 달리, 주변에는 온통 각자의 문제와 절망으로 허덕이는 주변인들로 가득합니다. 오로지 나 혼자만, 아무것도 없이, 넘치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현실속에서 영화속에 등장하는 우연한 계기로 슈퍼 파워를 얻게 되는 그런 기적을 바래보지만,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일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해피엔딩이 될까요? 주인공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로운 세계,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일상으로, 충분한 보상을 얻고, 보람을 느끼고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은 믿음의 영역인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대본은 드라마 1회 분량은 고사하고, 단 1일에도 못미치는, 순간 순간 수많은 사건들이 실시간으로 얽히며 발생하는 오늘이기에, 아무리 애를쓰며 찾아보려고 애써도 그 안에 미래의 해피엔딩을 위한 그 어떤 복선이나 인과관계를 찾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다 잘 될것이라는 믿음. 오늘의 최선이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 줄것이라는 믿음. 어제의 실수가 큰 문제가 되어 모든것을 망쳐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이 세계가 나의 최선을 인정하고 주인공인 나에게 결국 해피엔딩으로 인도해줄것이라는 믿음. 오늘 하루도 믿음을 바라고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