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를 위해

by 신출내기

갑작스러운 귀국이 결정되고 나서부터는 애써 견뎌왔던 여러 업무와 출장을 담담하게 해 나가기가 어려워졌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고,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억지로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지난 수년간을 달려왔는데 갑자기 귀국을 통보받고 나니 오만정이 다 떨어진 탓일 거다.

결정의 권한이야 회사에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 결정과 통보의 과정이 그동안 노력해서 이뤄왔던 결과들이 결국 거대한 회사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걸 새삼 확증하는 것만 같아 입맛이 쓰다.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위로와 아쉬움을 건넨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 현지 직원들, 현지에서 맺게 되었던 여러 인연들이 연락을 해온다. 정작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던 곳에서는 아무 말이 없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미쳐 함께하지 못하고 챙기지 못했던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위로를 얻는다.


생각해 보면, 정말 사랑하고, 돌봐주고, 마음과 시간을 나눠야 하는 소중한 것들을 잊고, 굳이 그렇게까지 헌신할 필요가 없었던 것에 과하게 몰입해서 지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내 것이 아니고, 내가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나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애써 아니라고 부정하며 혼자 달음박질했던 시간이 안타깝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더 먼 곳으로 달려가 헤매기 전에 멈춰진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무엇이 남을까. 평생을 어딘가에 소속되어, 어떤 책임과 권한과 의무를 버겁게 지고 가는 행군이 끝나고 나면 나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그런 때가 찾아오면 가장 먼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미래의 시간과 열정을 너무 당겨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때가 된 것 같다. 남겨질 것 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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