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들어온 지 3개월이 지나다 보니 이제 얼추 적응이 되었는지 익숙함에서 오는 평온함과 무료함이 찾아온다. 아침에 일어나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서, 내리기에 편한 칸에 타서 회사로 출근을 하고, 아침을 먹고, 커피 한잔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업무도 이제 제법 익숙해져서 오늘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감을 잡고 하루의 일과를 보낸다. 문득 앞으로 이런 하루하루를 얼마나 더 보내야 할지 살아가야 할 세월의 무게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새로 가입한 연금보험 납입하려면 앞으로 20년은 더 일해야 하는데, 똑같은 하루하루가 20년이나 남았다니.
퇴근하고 히로와 함께 저녁 산책을 나섰는데, 평소와는 다른 촉촉한 밤안개가 자욱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칼칼했던 바람이 사라지고, 기분 좋은 상쾌함과 시원함이 느껴진다. 추위를 피해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걸었던 동네 골목길이 여유롭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이 있다. 갑자기 추웠던 바람이 따뜻해지고, 무서웠던 공기가 시원해지는 순간. 물이 임계점을 넘어서 끓어오르듯, 계절의 기운이 모이다가 어느 순간에 탁 터져 나오는 그때가 있다. 그러고 보니 겨울이 아닌 한국의 계절을 느껴본 것이 얼마만이던가.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변하고 있다. 같은 하루인 것 같은데 어제와 다르고 내일과는 다르다. 생각해 보면 지난 18년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던가. 일했던 국가만 해도 러시아, 독일, 카자흐스탄.. 3개 국가였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변화의 에너지가 모이고 모여 새로운 시간이 만들어진다. 그 안에 살아가는 나도 변한다. 어떻게 변할지는 나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