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의 도서관에 왔다. 설 연휴가 끝나고 모두 일터로 돌아간 오늘 마침 우리 회사만의 휴일로 아직 끝나지 않은 휴식을 즐기고 있다. 긴 연휴 이후의 개관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다는 아내의 말이다. 미리 예약해 놓았던 책을 찾고, 열람실에서 잠시 책장을 뒤적이다가 한 권을 손에 들고 1층의 커피숍을 찾았다. 어르신들이 일하시는 커피숍인데, 같이 따라온 둘째를 위해 아이스티를 주문했더니 도란도란 두 분이 의논을 하시며 음료를 만들어 주신다. 나는 라떼를 받아 들고 잠시 테이블에 앉았다. 옆자리의 두 노인분들은 옛날이야기에 한참이시다. 나하고 친한 유명한 그 친구로 시작하는 무용담을 한분은 이야기하고 또 한분은 맞장구를 치며 듣고 있다. 모처럼만에 잠시 회사원이 아닌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엿보고 있다.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어찌 보면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자 저주이다. 작은 인과 관계들로 구성된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간다. 한참 동안 회사에서 부여해준 목표를 향해 살아가고 정해진 월급을 받으며 살다 보니 굳이 삶의 의미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는데, 회사에 속해있지 않은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니 문득 여기 모두는 무엇을 위해 여기 도서관을 찾아왔는지 궁금해진다. 도서관에 왔다는 것 자체가 사뭇 진지하게 삶을 살아가는 분들일 터이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공부를 하거나, 책 속에 숨겨진 지혜를 찾고 있는데, 나만 잠시 나그네처럼 이 자리에 와 있는 것만 같다.
부산 송정 바닷가로 일출을 보러 나갔었다. 아직 겨울이라 그런지 그렇게 이른 시간이 아니었던 아침 7시 저 바다 너머에서 해가 떠올랐다. 평소보다 높은 아침 파도가 방파제를 세차게 때리고 물보라가 안개처럼 피어나는 저 너머에 구름 위로 해가 떠올랐다. 해가 비추는 그 빛으로 만물이 살아가게 되니 일출이라는 것은 참으로 많은 의미가 있는 것인데 정작 그 해는 그렇게 애써서 떠오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태초에 신이 부여한 그 일상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을 뿐. 어제 보다 덜 빛났다고 아쉬워하거나, 아직 비추지 못한 곳이 있다고 후회하거나, 더 빨리 떠오르지 못해 조바심을 내고 있지 않았다. 해는 천천히 묵묵히 떠올라 그 에너지를 잠시 하루 바다에 나온 나에게도 충분히 전해주었다. 그냥 언제나처럼 떠오른 해가 대견하고 감사하다.
이제 곧 다시 시작될 나의 일상도 이렇게 태연하고 평온하길 바란다. 구름이 가려도, 세찬 파도가 쳐도, 바람이 불어도, 정해진 그 새벽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떠오르면 내가 비추는 그 빛과 온기가 어딘가로 펴져나가게 되겠지. 내 짧은 지혜로 상상하지 못한 인과 관계들이 나로 인해 시작되고 연결될 터인데, 나는 묵묵하게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면 되겠지. 내가 어디까지 비추이게 될지는 이미 저 너머의 다른분의 영역이다. 도서관을 찾는 동네 주민들의 일상처럼 나는 회사원으로의 일상을 보내면 충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