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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다 Sep 14. 2021

7. 2021년 세기의 여름

<일상 여행>

이유는 모르겠지만, <1913년 세기의 여름>을 읽다가 나만의 책과 영화 저장고에서 <환상의 빛>을 꺼내 들었다. 세계사에서 1913년은 꽤나 중요한 연대다. 제국주의 정점기였고 민족주의 확산으로 약소국가들이 독립을 외치던 해였으며, 발칸전쟁으로 인한 불안과 우울의 시기였던 한편 천재들의 시기였다. 프로이트, 융, 비트겐슈타인, 프루스트, 카프카, 피카소, 쇤베르크, 키르히너, 스탈린.. 의 청장년기가 이 시기에 걸쳐져 있다.



<환상의 빛>은 2014년 출간된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로 1913년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다. 어찌하여 <1913년 세기의 여름>에서 <환상의 빛>으로 점프하게 됐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영화로도 만든 이 소설은 사랑과 기억, 떠난 자와 남겨진 자의 빛과 어둠에 대한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묘사다. 고레에다도 미야모토 테루도 한 존재의 슬픔을 무수한 말줄임표로 솜씨 좋게 구현했다. 작품의 심리적 배경인 슬픔은 몽환적이다. 떠난 자이기에 말이 없어서도 그렇지만, 애초에 그가 왜 떠났는지도 모호하기 그지없다. 소설에서는 그 이유를 '사람이 혼이 빠져나가면 죽고 싶어지는 법'이라고 말한다. 영화에서는 '홀로 바다에 있으면 저 편에 예쁜 빛이 깜빡거려 끌어당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떤 슬픔은 알 수 없는 우연에서 비롯되나 보다. 카프카가 연달아 두 번, 첫사랑과 약혼과 파혼을 거듭한 것도 이후 세 명의 여인을 사랑했지만 갈팡질팡하다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것도 다 生의 어떤 우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본인도 모르는 生의 비밀 혹은 너무나 분명한 아픔 때문에 짐짓 모른 체하는. 그러나 괴팍하고 자기중심적인 변덕이라 하기엔 카프카 작품은 심오하게 의미 지향적이다.



어느 해 초여름 바닷속에 들어가 낚시한 적이 있다.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던 바다 표면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는 바다에서 일찍 나왔다. 바닷속은 한껏 부드러웠는데. 물고기를 세 마리나 잡았는데. 생애 첫 낚시가 꽤나 즐거웠는데. 바다의 빛이 자꾸만 나를 끌어당겼다.



#1913년_세기의_여름   #환상의_빛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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