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으로 남은 막내
할머니의 부재를 온기로 채워 준 발바리 방울이와의 추억
1988년 우리나라에서 첫 올림픽이 열렸다.
외할머니는 살아생전 올림픽을 보게 되었다고 감격해하셨다.
그 이듬해 5월 5일 아침에 폐암으로 소천하셨다. 어머니는 무남독녀라 평생 친정어머니와 함께 사셨다. 우리 형제들도 할머니 품에서 컸다.
할머니의 부재 후 우리 가족은 그분의 빈자리로 마음이 텅 비어 허전했다.
누구 하나 입을 열어 할머니 이야기를 해도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펑펑 울었다.
어느 가을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강화도로 여행을 떠났다. 마니산 참성단 꼭대기에서 하늘을 올려 더 보며 기둥이시던 어른이 세상에 없는데 세상은 평온하고 어찌 저리 맑고 아름다운지 너무 허무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동생이 강아지를 데려다 키우면 어떨까? 말을 꺼냈고 어머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셨다.
모란에서 장이 서는 날, 어머니는 눈이 똘망한 얼룩 강아지를 안고 오셨다.
겁을 먹어 바들바들 떨고 있는 생후 4개월짜리 발바리 새끼였다.
하루하루 지나서 조금씩 밥을 먹으며 몸집이 자라 가는데 앞다리와 뒷다리가 굵기가 다르게 짝짝이였다 동물병원 의사가 북엇국을 먹여보라고 알려 주었다. 며칠 먹이니 신기하게 네다리가 같아졌다. 생김새에 걸맞은 방울이란 이름도 지어주었다.
방울이는 낮에는 졸고. 밤에도 현관 앞에서 잤다. 참새들이 날아와 지 밥그릇에 앉아 쪼아 먹어도 장난치듯이 쫓는 채만 할 뿐 짖지도 않고 멀뚱히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마당에 묻은 김장독 뚜껑을 열면 쏜살같이 달려와 먹고 싶다고 짖었고 주둥이에 김칫국물을 흘리며 맛나게 받아먹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친정에 오면 잊지 않고 반가워라 맞아주었지만 갈 때 손에 보따리라도 있으면 놓고 가라고 친정 살림 거덜 난다고 골목 끝에서 안 보일 때까지 짖었다. 늘 목줄 없이 집마당에서 풀어 놀다가 산책 나간다고 목줄을 묶으면 첨방지축 뛰어다니며 송아지만 한 개에게 덤비다가 물리고, 차도 피할 줄 몰라서 치기도 했다 다쳐서 꿔 매고 방안에 놓으면 가족들 몸을 비비며 기대어 낑낑댔다
아무것도 몰라랐어요 놀라고 무서웠어요 위로해 달라는 몸짓이었던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강아지를 키우는 게 뭔지. 훈련시키는 방법도 모르면서 용감하게 한 생명을 데려왔던 거였다.
산책이 개의 일상에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다.
그토록 무지한 주인 가족들이 하루종일 나갔다 오면 꼬리가 떨어지라 흔들며 차별 없이 반가워해 주었다.
15년을 마당 있는 집에서 살다가 새 아파트로 이사가게 되었을 때 신기하게도 여러 합병증으로 갑자기 무지개 나라로 떠났다.
가족을 잃고 허전하던 마음을 채워주러 온 존재가 우리 집 막내 방울이란 갈 방울이가 떠나고 나서 알았다. 그랬다. 방울이가 오고 나서 우리는 할머니의 부재를 제삿날이 되어 기억했고, 사소한 일상 속에서 웃고 있었고 잠도 잘 자게 되었으며,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왔다. 방울이가 생각나면 내 몸에 기댔던 온기가 떠오른다. 작은 생명의 따스함도 서로에게 의지했던 소중함도 모락모락 추억으로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