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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성희 Nov 13. 2024

대가없는 베품

- 아주 특별한 이웃 1-


 "제가 이번 주말에 이사 갑니다. 정든 이곳을 떠나며 이웃 분들과 나눴던

일상의 대화, 웃음, 함께 한 시간들이 정말 감사하고 제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의 추억은 오래도록 간직할 것입니다."

아침에 입주자 카페에 들어가니 온 동네 척척박사 청루안인이 쓴 이사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글 아래에는 주민들이 쓴 70여 개의 댓글과 400여 개의 좋아요가 줄줄이 달려 있었다.

    

"늘 행복하시고 아낌없는 조언과 도움에 감사드려요".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해 주셨던 분이라 생각했어요."

"궁금증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시라 의지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 감사의 마음을 이제야 적어봅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따스함과 지혜가 빛나던 분이신 거 같아요."

글을 읽는데 마음이 먹먹해 왔다. 씁쓸한 서운함도 함께 몰려왔다. 댓글 몇 개만 읽어도

청루안인님에 대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닉네임 청루안인, 102동 23층 주민, 건축 설비 국제 자격증 보유자.

이름도 나이도 모습도 모른다. 만난 적도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다들 나와 마찬가지지만

"청루안인"을 모르는 주민은 없다. 적어도 우리 동네에서는 멍멍이도 아는 이름이다.

든든한 동네 수문장으로 입주 이래 우리의 일상과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직업에서 알게 된 정보로 아파트 생활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문제들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자칭 타칭 오지라퍼, 프로 참견러다.

 그분 덕분에 입주민들은 집안일에 관해 풍월을 읊는 서당개가 되었다.

솔직히 우리는 소소한 댓글로만 감사함을 표시했지만 사실 준거 하나 없이 은혜만 입고 살았다.

나는 그분 글을 읽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잊어버릴까 봐 휴대폰 메모장에 자동으로 저장했다.

입주하고 제일 먼저 난방비를 줄이는 방법을 따라 했으며, 전열 교환기(환기 자동 시스템)를 주기적으로 가동했고  교체시기마다 기사를 부르고 필터를 바꿨다.  

층간소음은 바닥 매트 설치가 만능 해결법이 아니라 거주자 누구나 가해자임을 자각하며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사람이 아닌 수격 낙하차 소리로 생긴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 밖에도 많다.

욕실 수압 조절로 물절약하기, 베란다 결로 없애기. 장마철과 일상의 습기 관리법, 창문 여는 방향과 위치로

건강한 환기법 등등 우리 집에 해당사항이 있든 없든 살아가면서 필요한 알쓸신잡을 넘치도록 배우고 익혔지.

 

어쩌다 보니 나를 포햠해 입주민들은 집 관리 준전문가가 된 셈이다. 카페 사랑방에 글을 보니 주민들은 나처럼 알려주신 조언을 따라 하기도 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기도 했다.

그런 글이 올려졌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도 많았다.

5년이란 시간은 길고도 짧았다.  1679세대에게 공기나 물처럼 의미 있어도 당연하게 존재하는 걸로 알만큼의 세월이었다. 이제는 그분 정보를 치면 "탈퇴회원"이란 네 글자만 뜬다.

먼 훗날 이곳을 떠올린다면 아련한 추억과 함께 박제될 것이다.

지금도 "아이고, 어떻게 해요!" 외치면 어디선가 스르륵 나타나

"걱정 마세요!" 하고 댓글로 화답해 주실 거 같다

 대가 없는 베풂이란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한 마음 씀씀이다. 누군가에 받고, 배운 선한 영향력은 모두의 마음에 싹을 틔우게 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도움을 건네는 다리로 손길로 이어지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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