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래와 안개의 집'
집이란 무엇일까?
밖에서 지치고 힘들어
구겨진 내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쉬어도 좋은 곳
어딘가로 숨고 싶을 때
비비고 들어가 있을 만한
안전한 장소.
어린 시절 아이들과
신나게 놀다가
뉘엿뉘엿 해가 지면
식구들과 머리 맞대고 밥 먹는 곳.
마음 저 밑바닥
기억에 남아있는 소중했던 사람들과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하던 앨범집.
때론 사회적 위치와 경제력을 나타내는 집합체.
영화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갈등과 비극으로 얼룩지는 곳!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곳이 집이 되기도 한다.
<모래와 안개의 집>영화는 집을 지키려는 자와 차지하려는 자, 각자의 입장에서 집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한다.
집이라는 정체성과 희망의 상징으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한다.
캐시는 얼마 전 이혼을 했다. 너무나 아이를 갖고 싶어 했지만 남편은 원치 않았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에 아이를 바라지 않는 거라 여기며 마음 아픈 이혼을 선택한 거였다.
현재 그녀는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집에 와서 머물고 있다.
무기력하고 우울증에 빠져있던 그녀는 카운티 시에서 보낸 세금 통지서를 열어 보지 않고 문간에 방치한다.
어느 날 새벽. 어머니가 2주일 뒤 집으로 오겠다는 전화를 받는다. 마침 그날은 카운티 공무원들이 들이닥친 날이기도 하다.
시에서 여러 차례 세금체납 독촉장을 보냈는데 집주인인 캐시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자 결국 집이 경매에 붙여지고 낙찰된 새 주인이 오니 집을 비워달라는 퇴거 통보를 하고 간다.
그녀는 뒤늦게 영업세를 내라는 고지서를 보고 기함한다. 가정주부에게 무슨 영업세냐며 뒤늦게 항의를 하지만 소용이 없다. 더구나 소명할 수 있는
이의신청 기간이 한참이나 지나 버리지 않았는가!
어찌 보면 자신의 무심함과 게으름이 집을 잃게 만든 결과였다.
레스터가 알려준 변호사 말대로 집을 비워야 할 상황에 이르렀음을 깨닫고 짐을 보관소에 맡기고 모텔로 향한다. 이제는 신용카드도 정지되어 쓰지 못한다.
이때 보안관 대리로 온 레스터가 다가온다. 누구 하나 의지할 데 없는 처지에 그의 친절함에 마음이 끌린다.
그는 유부남으로 아이 둘이 있는 가장이었지만 동창생과 맺어진 결혼생활에 불만을 품고 벗어나고 싶어 한다.
캐시는 그의 삶을 변하게 만드는 불씨가 되었으나 이 둘은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다.
한편 캐시의 집을 낙찰받아 이사 오게 된 베라니는 이란 출신 이민자다.
이란에서 대령으로 왕정에 충성하던 인물이다. 부유하게 살다가 왕정이 무너지자 미국으로 망명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그는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예전의 삶을 버리지 못한다. 좋은 집에 멋진 가구를 들이고 비싼 차를 소유하고 있으며 지인들에게는 보잉사에 근무한다고 거짓말을 한다.
겉보기에는 부유한 이민자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생계비를 벌려고 낮에는 건설 노동자로, 밤에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미국에서의 정착을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우연히 신문에서 경매 물건으로 나온 집을 발견하고 싼 가격에 구입하려고 한다.
어서 빨리 예전처럼 안정되고 유복한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서 앞 뒤 재고 할 겨를이 없이 마음이 조급하다.
경매물건은 바닷가 근처로 전망 좋은 집이었다. 헐값에 사들여 그럴싸하게 개조를 한 후 비싼 값에 되팔아 보려 한다.
목돈을 챙겨서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앞으로 이렇게 경매로 나온 집을 사서 개조해 아들의 대학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려고 계획한다.
그러나 아내는 이란을 떠나 도망치듯 떠밀려 온 미국에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고, 남편의 일방적인 이사 결정에 반대한다.
남편의 강압으로 이사를 와보니 예전에 살던 집이 떠올랐다. 평온한 주변 풍경으로 차츰 적응해 가보려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들에게는 저 먼 미래에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과 같은 아들 에스마일이 있기에 모든 어려움을 견뎌내 보기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캐시는 쫓겨난 집이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오늘도 집 근처를 맴돈다.
아버지가 30년이나 걸려서 장만한 애지중지하던 집은 새 주인의 의도대로 마구 뜯기고, 부서지고 달라져 가고 있었다. 개조란 명목일지라도 아버지에게 미안하고 속상해 화가 났다. 저도 모르게 인부들을 저지하다가 그만 못에 발을 심하게 다치고 만다.
베라니의 아내 나디는 캐시의 다친 발을 보고 정성껏 치료해 주고 위로를 해준다. 치료를 받는 동안 캐시는 집 개조를 항의하려던 말을 꺼내지 못한다. 베라니 가족에게 따스한 이끌림을 느낀다.
캐시는 레스터의 호의가 싫지 않다.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다시 사랑에 빠지고 그에게 의지하기로 한다.
레스터는 캐시를 만난게 새롭게 태어난 거 같다고 고백하며 아내와 헤어지고 그녀와 함께 할 거라고 말한다.
둘은 레스터의 오두막을 임시 거처지로 정하고 함께 지낸다.
한편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온다. 카운티 시에서 영업세라는 잘못된 세금 고지서를 보낸 과실을 인정하고 바로 잡으려 시에서 집 판 돈을 돌려준다고 해도 베라니가 꿈쩍하지 않는다며 심지어 집값의 4배를 주면 팔겠다고 억지를 쓴다고 했다.
캐시는 베라니를 찾아가나 집에는 아내 나디밖에 없었다.
남편이 집값의 4배를 내라고 하나 자신은 그만한 돈이 없으며 싸우고 싶진 않지만 소송을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나디는 자신들과 같은 이민자에게 미국 법원이 불리한 판결을 내릴 것이고, 만약 이 일로 추방되면 이란으로 돌아가자마자 죽을 거라며 울먹인다.
캐시는 베르나를 설득해 달라는 말을 건넨다.
이때 베라니가 집에 들어서고 캐시를 내쫓는다.
둘은 실랑이를 벌인다.
베라니는 화가 나서 따지는 캐시의 팔을 잡아끌어 차에 억지로 밀어 넣고 가라고 소리친다.
팔에 난 손자국을 보고 화가 난 레츠너는 베라니를 찾아가서 원래의 가격으로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하며 자신은 이민국에 아는 사람이 있고 매일 이민자들이 추방된다는 것도 알고 있냐며 협박한다.
이 일로 아내 나디와 다투기까지 한다. 고국에서 죽을 각오로 도망쳐 미국으로 망명을 하며 어떻게든 살아가려 하는데 다시 추방되면 귀국하자마자 전정권의 핵심 인물로 온 가족이 몰살당하는 건 불을 보듯 뻔했다. 두려움과 분노에 휩싸인 그는 레츠너를 경찰 내사과에 고발한다.
이 일로 레츠너는 징계를 받고 가족들까지 힘들어진다.
레츠너의 집에 경찰관들이 찾아오게 되고
가족들이 두려워하며 레츠너를 찾아와 울먹인다. 마음이 약해진 레츠너는 집으로 돌아간다.
레츠너가 떠나자 혼자 남겨진 캐시는그를 기다린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른다. 기다림이 쓸데없는 일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고 원망스럽다.
이 모든 게 자신의 어이없는 실수로 벌어지고 마지막 남은 집마저 잃게 된다고 생각하니 미칠 거 같았다.
이제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끊었던 술을 사 와서 잔뜩 마시고 자동차를 달리다 온 게 자신이 살던 집 앞이었다. 차 안에 레츠너의 총을 발견하고 술김에 자살을 결심한다. 방아쇠를 당기지만 불발이 되고 만다
집 앞에 캐시의 차가 오랫동안 서있는 걸 이상하게 여긴 베라니는 차 안에서 들리는 캐시의 울음소리를 듣고 캐시를 안고 집으로 데리고 온다.
만취한 그녀가 토하고 나자 아내가 몸을 말끔히 씻겨준다.
캐시는 약장에 있는 나디의 약을 입안에 털어 넣고 다시 죽으려 하지만 발각이 되고 가족들이 토하게 해서 그녀를 살린다.
간신히 살아난 캐시를 찾아온 건 레츠너였다.
오두막을 떠난 걸 알고 베라니의 집을 찾아 와보니 그녀가 있었던 거다. 레츠너는 베라니가 캐시를 해치려 한다고 오해를 하고 가족들을 총으로 위협해 욕탕에 가둔다.
사실 베라니는 레츠너가 총만 없으면 못난 겁쟁이 라며 레츠너에게 협조하는 척하다가 그를 제압할 것이라고 아들 에스마일에게 계획을 말한다.
다음날 아침, 욕실에서 내보내 달라는 베라니는
돈을 돌려줄 테니 대신 집은 내게 넘겨달라고 한다. 레츠너는 돈도 생기고 새롭게 인생을 출발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한다.
레츠너는 그 돈으로 캐시와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
레츠너는 베라니와 에스마일을 데리고 시청으로 간다. 베라니가 딴마음을 먹지 못하게 에스마일을 인질로 잡으려 한다.
레츠너가 베라니를 협박하는 사이에 레츠너의 총을 빼앗은 에스마일은 그를 위협한다.
이때 근처를 지나던 경찰에게 이 광경이 눈에 띈다.
경찰은 아랍인인 에스마일이 총을 겨누는 것을 보고 위험하다고 여겨 에스마일에게 총을 쏜다.
쓰러진 에스마일을 보고 베라니는 오열한다. 병원에 옮겨진 에스마일은 위독한 상태다.
베라니는 오열하며 신에게 기도한다.
신이여! 내 아들을 살려주신다면
새에게
내 눈알을 쪼아 먹이겠습니다!
그저 살려만 달라고 집과 돈과 가진 돈 전부를 캐시에게 다 주겠다고.....
그러나 간절한 기도도 소용없었다.
아들은 죽음의 강을 건너 버리고 만다.
집으로 돌아온 베라니는 말한다.
곧 이스파한의
꽃밭으로 돌아갈 수 있어.
콤 서원으로.....
너무 멀리 왔어.
이젠 돌아가야 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운명으로.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고....
나즈막히 읇조리는 그의 말에는 단호한 무언가를 결심하는 듯 처연하다.
베라니는 아내 나디에게 약을 탄 차를 건넨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디는 차를 마시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자신도 그녀옆에서 생을 마감한다.
영화는 집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를 바탕으로 소유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싸움과 갈등 속에서 결국 파국을 맞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끝부분의 비극적인 장면으로 인해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성경에 나오는 "모래 위의 집, 반석 위에 집"이란 비유처럼 우리의 삶이 한순간의 선택이나 작은 실수로 얼마나 위태로워지는지 영화는 똑바로 보게 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든다.
사실 둘은 적이 아닌 같은 목적을 가진 한 편이었는지 모른다고.....
마지막에 침대 위에 셋이 누워 있는 장면이 그러하듯이......
어쩌면 베라니나 캐시, 이 둘은 집이란 존재가 단순히 공간적 개념이나 부의 재테크가 아닌 안전과 사랑을 지키고 키워가는 곳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영화는 그런 의미를 이야기하려고 적으로 그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장면 사진; naver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