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ing" 를 보고]
특별할 게 없이 잔잔하게 전개되는 영화가 좋아요. 슴슴해서 무미해서 언제까지 먹어도 질리지 않는 누룽지같은... 음식도, 사람도, 사랑도...
[....ing]에서 민아 (임수정 분)는 시한부 생명을 살아가는 고3 여고생입니다.
홀어머니(이미숙 분)와 단둘이 살아요. 아침마다 엄마는 미나의 뽀뽀로 배웅을 해요.
"잊은 거 없어?"-엄마
"쪽!"
"욕구불만이야!"-딸
""애정표현이야"-엄마
"애인을 구해봐!" -딸
민아는 락음악에 심취해 있어요. 헤드폰를 끼고 맥주도 마시고 담배도 피워요.
새로 이사 온 아랫집 남대생(김래원 분)이 자꾸 다가와 알짱거리는데 싫지 않네요.
민아는 늘 고약한 병과 살았던 외로운 소녀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병명을 바꿔 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바람에 친구 하나 없어요. 그녀 말대로 사귈만 하면 퇴원하거나 하늘나라로 떠나가 버렸거든요.
민아는 슬프거나 외로우면 구름에서 쏙 나오는 햇님이 되어요. 밝고 씩씩해져요.
어느날 엄마는 양갈래 머리를 땋고 민아에게 자신을 "미숙씨"라 부르라며 언제까지나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합니다.
자신보다 어쩌면 길지 않을 딸의 인생길이 외롭지 않게 마음 속 이야기도 털어놓고, 영화도 보러가고, 장난도 치고 찰떡 단짝이 되어줍니다.
민아는 발레리나를 꿈꿔요.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마음속엔 사춘기 소녀의 감성과 극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민아는 사실 병원이 해줄 치료는 더이상 없어요. 엄마는 민아의 남은 날들이 여태까지처럼 병상에서만 있게 하지 않으려해요. 기적은 아직 살아있는 것이며, 차라리 하고 싶은걸 마음대로 하며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민아에게는 완치되었다고 하며 뭐든 무리하지 말고 다해보라고 하죠.
태어나서 지금까지 몸에 칼대고 호스 꽂고 고생만 해왔기에 고작 몇달 더 살게 하려고 그 고통을 겪으며 죽어가게 보고 싶지 않은거죠.
다가올 시간의 타이머가 작동하는 동안 민아는 좋아하는 발레도 배우고,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하고 유럽으로 발레 공연을 보러 갈 계획을 해요.
어느 날 학교 앞 건널목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기수 아저씨를 보아요.
알고보니 기수는 사랑하던 사람을 교통사고로 잃고 난후 정신이상자가 되었던 거죠.
민아는 사랑이란게 이런 거라고 마음으로 그려보며 엄마에게 말해요.
"내가 보는 사랑은 말이야. 이런거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비오는 날 교통사고로 죽었어. 그후로 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며 교통정리를 하는거지! 하루도 빠짐없이 ....비오는 날은 울면서..."
"나중에 내가 데려오는 남자가 미숙씨 맘에 들어도 일단 반대를 해줘. 그게 더 멋지잖아. 나는 온갖
장애를 뛰어넘는 불멸의 사랑을 할거야."
"아직도 엄만 아빠를 사랑해?"
"몰라! 다 잊었어."
엄마는 지난 시간이 담긴 앨범을 꺼내봅니다.
결혼식날의 설레는 표정의 두 신랑 신부가 나옵니다.
미나가 태어난 날 발그레 상기된 표정의 젊은 아기 엄마도 보입니다.
졸업식 사진 대신 병원 간호사님들이 퇴원을 축하해 주는 씩씩한 민아도, 아파도 시간은 흘러 키도 쑥쑥 자라고 어김없이 생일도 맞이하는 행복한 민아도 있습니다.
엄마는 아빠 사진을 보며 말해요.
'난 당신과 미나에게 빚졌어.'
"바로 행복이란 빚이야. 당신에게 빚진 빚은 갚지 못하지만 미나에게 진 빚은 다 갚아 줄거야."
마트 주차장에서 미나는 자신의 왼쪽 손가락이 세 개 밖에 없는 이유를 묻죠.
엄마는 마침내 출생의 비밀을 오늘에서야 말하게 되었다며 비장한 표정으로 말해요. 사실은 친아빠가 외계인이었다구요.
민아는 3초는 믿었다며 허탈해 합니다.
차츰 아랫집 영재 오빠가 주는 관심과 사랑도 받아들여요.
하루하루 초침이 흐르는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며
"나 지금이 너무 좋아.".
"지금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어." 외쳐요.
어느 날 영재 오빠가 고백하죠.
"나, 너한테 첫눈에 반한거 같아!"
미나는 당황해 해요.
민아는 생각이 많아져요.
엄마는
"괜찮은 놈같아, 잘해봐."
"미숙씨 줄게."
"병아리 사다가 키워서 닭 튀겨 먹는게 낫지, 솜털 뽀송한 앨 데려다 언제 키워 잡아 먹냐!"
둘의 살벌한 농담에 갑자기 극장안은 술렁거려요.
푼수같은 엄마가 창피하지 않아요.
엄마는 미나에게 네가 행복한게 제일 좋다며 아프지 말고 사랑하며 살라고 해요.
학교에서 친구들이 그 달의 별자리 운세를 보네요.
기뻐하고 실망도 하네요. 민아도 처음으로 친구들에게 다가가 나도 보겠다 하고 별자리 연애운을 보며 영재 오빠를 떠올리죠.
민아의 요즘 관심사는 사랑이 테마인듯 합니다.
잘자라고 굿나잇 인사에 이젠 엄마 볼에 맞뽀뽀를 해요. 엄마는 남자친구한테 하려고 미리 연습하냐며 놀려요.
"제법이네. 남자도 꼬시고."
민아가 어느새 자란게 대견합니다.
민아는 친한 간호사 언니를 만나러 갑니다. 간호사 언니는 남자친구가 생기면 너 하고픈대로 다해보라고 용기를 줍니다. 민아는 안심합니다.
영제오빠는 그녀의 기형인 손가락을 가엾어 합니다. 그녀가 다른 여자하고 달리 약하고 정상이 아니어도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사랑스러워 해요.
함께 발레 공연 포스터를 찍으러 가서 처음으로 토슈즈를 신어봅니다. 난생처음 발가락을 세우고 중심도 잡습니다. 공연으로 보던 발레는 마냥 아름답기만 한게 아니었어요.
엄마는 토슈즈를 선물해줘요.
무용수들이 늘 30프로의 통증을 안고 살아간다며 누구나 힘든게 있다고 해요.
영재는 벽에 붙여놓은 사진을 바라봅니다. 그동안 찍어온 민아의 사진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게 되었는지 깨닫습니다.
민아와 엄마는 유럽의 발레 공연 대신 민아가 보고싶어 하는 바다거북을 보러 하와이 여행을 준비하죠.
짐꾼 겸 보디가드, 사진사, 투어 가이드로 영재를 함께 데려 가자고 해요.
어느 날 엄마가 만취한채 귀가하고 엄마를 침대에 눕히고 나오다가 엄마의 일기장을 보게 되어요.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되죠. 시한부라는 사실을요! 민아는 밤새 울어요.
다음날 비오는 건널목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기수 아저씨가 펑펑 울면서 서있는 것을 보며 따라 울어요. 남아 있는 사람들은 떠난 이를 잊지못해 평생 빗물에 감춘 눈물을 흘리며 살거라구요.
이걸 보고 영재가 달래줍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그리운 이가 영원히 함께 하는거라구요.
민아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예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지금이 소중한지 담으려해요. 상큼한 새벽 공기를 가슴 가득 담고, 둘이 자주 오르던 전망대에서 영재와 거북이들과 사진을 찍어요.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마음속 깊이 박제해 두려구요.
엄마의 일기장에 꼭 행복하게 살아서 엄마의 바람대로 선물을 주겠다는 약속의 말을 남겨요.
민아는 하와이로 바다거북을 보러 가지 못하고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져요. 매일 영재는 병실에 와요. 민아에게 하와이에서 그녀와 갈 이곳저곳을 이야기하고 함께 바닷속을 헤엄치며 바다거북을 보는듯이요.
해가 지는 금빛 해변에서 둘은 사랑스런 눈길로 입맞춤도 해요. 그 모든 것을 민아는 다 듣고 보고 함께 꿈꾸고 있었나봅니다. 그녀의 눈에서 행복한 눈물이 또르르 흘러 내려요.
임수정이 주인공이라서 본 영화입니다.
그녀의 매력은 잔잔히 내리는 가랑비입니다. 우산을 써도, 쓰지 않아도 그냥 맞아도 걱정 안되는 솔솔솔 봄비예요.촉촉히 내리고 나면 세상은 비가 선물한 계절이 되죠. 임수정은 봄비같이 연하고 풋풋해요.
*이 영화는 자칫 진부하고 통속적인 내용에 102분이란 긴 시간을 버티며 보게 하는 건 인물들의 위트 넘치는 대사와 영화 사이에 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