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완전히 끝난 거야."
수연이 차갑게 밀칩니다.
"너 거기서 버틸 수 있어?"
"몰라!"
운영하던 술집도 망하고 간경변으로 몸까지 상한 영수는 연인에게까지 버림을 받고 시골의 작은 요양원으로 들어갑니다.
이곳에서 적응해 가던 차에 같은 방 노인이 목을 매 죽은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나는 죽는다. 너는 잘 살아라!"
한 줄 유언장에 영수는 몸서리칩니다. 마침내 자신이 죽음과 삶의 경계에 와있음을 눈앞에서 실감합니다.
요양원에서 환자로 8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은희는 다른 환자들의 재활을 도우며 삽니다. 폐가 40프로밖에 기능을 못하는 몸이라 죽음이나 삶에 대해 의연합니다.
담담하게 새로 온 영수를 위로하고 살뜰히 챙깁니다.
둘은 서서히 가까워집니다.
첫 데이트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은희가 말해요.
"깜깜한 극장 안에서 애인들은 손도 잡고 하던데 실제는 안 그런가 봐요."
은희가 수줍은 미소로 영수에게 플러팅을 합니다.
영수 씨는 겁이 많아요.
내가 안 무섭게 해 줄까요?
"그렇게 좋으니? 그 사람이!"
원장 선생님이 은희를 걱정합니다.
"너처럼 환자가 환자를 돌보는 일은 어렵단다."
그럼에도 은희는 영수를 사랑하는 일이 자신의 삶에 특별한 의미와 희망을 준다고 들떠 있어요.
영수와 하룻밤을 보내고 그에게 말해요.
"같이 살래요? 결혼하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언제 죽을지도 모르잖아요."
"영수 씨가 낫도록 내가 도와 줄게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럼 그때 가서 헤어지죠 뭐!
그런 게 없던 영수는 그런 게 있는 은희와 함께 살기로 하고 희망 요양원을 떠납니다.
은희는 영수를 위해 건강식을 만들고 운동을 함께 하고 일과표를 만들어요. 그녀의 하루는 영수를 위한 나날들로 채워져 있어요.
"왜 뽀뽀를 하고 있는데도 뽀뽀가 하고 싶지?"
"넌 내가 그렇게 좋니?"
"응."
영수가 묻습니다.
"그런 게 있긴 있구나!"
"그런 게 있어요 영수 씨."
어느 날 은희는 영수에게 줄 약초를 캐러 산에 갔다가 소낙비를 만나 쫄딱 젖습니다.
은희에게 감기는 치명적입니다.
영수는 자신의 몸을 생각하지 않고 상대에게 온정성을 쏟는 은희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합니다.
"너는 애가 멍청한 거니? 궁상맞은 거니?"
은희는 자존심이 상합니다.
"말조심해!"
그날 밤 은희는 밤새 고열에 시달리고, 영수 덕분에 위급한 상황에서 목숨을 건집니다.
"너 아픈 거 보니까 내가 죽을 거 같더라."
"죽을 때 꼭 내 옆에 있어줘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나, 이제 너 없으면 못 살 거 같다"
싫어지면 헤어지자며 가볍게 생각했던 두 사람의 사랑은 이젠 없으면 죽을 거 같은 사랑이 되었습니다.
1년 후 영수는 은희의 돌봄으로 건강이 되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전 애인 수연이 찾아옵니다.
"은희 씨 참 예뻐요."
"그쪽도 예쁘시네요"
"넌 복도 많아."
수연이 비웃으며 물어요.
"좋아?"
"다 좋아!"
"그런 게 어딨어. 네가 다른 여자랑 있는 게 이상하다."
"자기, 여기랑 안 어울리는 거 알아?"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갈까!"
전 여자 친구 수연은 영수가 쓰던 폰을 건네고 그를 다시 잡으려 합니다.
그 만남을 계기로 영수는 술과 담배를 가까이하게 되고 서울 생활이 그리워지기 시작합니다.
'몸에 좋은 게 사는 재미가 없지.'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마음에 박힙니다.
영수의 마음에는 익숙했고, 잊고 있던 도시라는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계시는 서울로 잠시 바람이나 쐬러 가겠다던 영수는 전 연인을 찾아가고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내며 갈등합니다.
한편 약속된 날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영수는 은희의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나 무섭고 너무 화나, 빨리 전화받아!"
흔들리는 영수는 애인옆에 누워서 말합니다.
"네가 나 대신 받고, 나 죽었다고 해줘!"
은희는 그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못생겨졌어!"
밉고 미웠지만 그리운 영수를 보고 은희는 이 말밖에 건네지 못합니다.
사랑이란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가 되나 봅니다.
은희에게 돌아온 영수는 지루하고 궁상 맞은 시골생활과 병약한 그녀의 모습이 점점 부담스러워져요.
결국 그런 게 있는 세상에 살던 은희와 그런 게 없는 세상에 살던 영수의 사이는 점점 균열이 가기 시작합니다.
"요새 노후자금이 얼마 드는 줄 알아? 4억 7천이래."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해?"
"앞날은 어떡하고"
"오늘 하루 잘살면 그걸로 됐지,
그렇게 살면 된다고 생각해!"
"너처럼 세상이 그렇게 단순한지 알아?"
"지금 좋다고 나중까지 좋으란 법 있어?"
"난 나중 같은 거 몰라!"
"말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밥을 먹고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이죽거립니다.
"너 밥 천천히 먹는 거 지겹지 않니?
난 지겨운데!"
영수는 이제 은희의 소소한 생활 습관까지 지겨워집니다. 아니 은희와 함께 하는 모든 것들과 지금이 지겨웠습니다.
내일을 기약해 본 적 없이 살던 은희는 달라진 그에게 서럽기만 합니다.
어느 날 둘은 놀이공원에 놀러 가고 시끌벅적한 곳에서 신나하는 영수를 바라보던 은희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그렇게 은희가 슬픈 예감을 하던 여행을 다녀온 후 어느 날 술에 만취한 영수는 수연의 충고대로 비겁한 선택을 합니다.
"너 그냥... 나보고 헤어지자고 하면 안 되니?"
"나 여자 생겼어. 나 서울 갔을 때 그 여자랑 같이 있었어. 걔랑 있는 게 너랑 있는 거보다 훨씬 편해."
"개새끼 네가 사람이니?"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안돼! 안돼! "
"영수 씨, 내가 그 여자보다 더 잘해줄게."
"여기서 예전처럼 살면 안 돼?"
은희는 빌고 영수는 괴로워합니다.
지난날의 추억과 약속을 모두 잊은 듯한 영수의 모습에 은희는 슬픔을 가눌 길이 없고 죽고 싶은 슬픔과 죽을 듯한 통증에 오열합니다.
이제 그녀는 영수의 바람대로 그를 보내주려 합니다.
마침내 은희는 먼저 이별을 말합니다.
"나 영수 씨 만나고 좋았지만 이제 싫어."
"미안해!"
"미안해서 어떻게 할 건데."
"나가줘. 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그녀가 챙겨주는 가방을 밀며 나오는데 은희의 통곡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영수는 애써 발목을 잡히지 않으려는 듯 발걸음을 서둘러 재촉합니다.
하지만 서울로 돌아온 영수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처음엔 괜찮은 듯 여겨졌죠
거울 속에 자신에게 침을 뱉습니다.
"쓰레기~"
은희에게 속해 있던 세상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는지 깨달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영수의 삶은 처음으로 돌아가버립니다. 다시 죽음과 가까워져 버렸습니다.
우연히 만난 희망 요양원 원장으로부터 은희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들었지만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병실을 가게 되죠
은희는 영수를 용서하는듯 그를 향해 손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이며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둘이 살던 집으로 돌아온 영수는 은희의 옷을 안고 오열합니다.
영수의 모습과 그녀가 없는 그녀의 세상으로 다시 들어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쓸쓸히 막을 내립니다.
고통과 절망 끝에서 지금의 감정에 충실했던 두 남녀!
어느 가을 짧은 한낮 같았던 순간을 함께 하고, 각자의 세상으로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찰나의 찬란함과 허무를 그린 명작 행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