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내 남자의 요리
by
페이지 성희
Dec 27. 2024
남자가 부엌 문지방을 넘으면
무엇이 똑 떨어진다거나
어딜 여자가 있는 집에서 남자가
체신없이
부엌
을 들락거리냐며
밥상은
커녕 수저 하나도 놓지
못하게
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 게
당연한 시대에도
어떤 남자는 요리하기를 좋아하고
아내보다 잘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부엌 문지방을
넘지 못하게 함이란 가족을 위해 밥벌이 하는 가장을 존중하는 의미였으리라
.
과거 나의 친정에서는 남동생이 오밤중에 야식으로 라면을 드신다고 하면
여자인
누나란 사람은 묻거나 따지거나 열받아서는 안되며 심지어
자다가 깨어 비몽사몽 상태일지라도 남동생에게 끓여다 바쳐야 했다.
이런 아픈 기억을
마음
한 자락에
품고 결혼하고
나서도
내 남자에게 다시 보나
했
는데
난 살아보고 나서 알았다.
옆지기는 음식을 할 줄 알았고,
심지어 좋아라 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보니 시어머니가
어쩌다
보니 잘 키워버린(?) 아드님이셨다.
시어머님은 뭘 해도
"오구, 잘한다!
"
하며
잘한다표 교육관이신데다
아드님의 호기심 많은 성격과
교사인
아버님의 잦은 전근으로
시골 오지에서
뛰어놀며
자란 탓도 있었다.
자연에서 보고 얻는 온갖 동식물(?)이 식재료가 된다는 걸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었단다.
신혼 초에 그는 계란과 양파, 당근만으로 보들보들한
야채 햄버거를 만들어 내놨다.
남자가 요리라니 신기했다.
아이들이 자라서
아빠
껌딱지 아들까지
둘이서
주방에 들어갔다 하면
음식
하나가
뚝딱 탄생했다.
대신
주방은
눈뜨고 보기
아까웠
다.
손대기
망설일
정도로
인정사정없이
어질러
놓았다.
곧이어 자동발사하며 쏟아지는
나의
잔소리!
그
덕분이라도
잠시 그러다 말겠거니
했
다
.
쥐꼬리만큼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이 사람 뭐지 싶은 게 도전 목록이 거침이 없었다.
시골에서 보내주신 밤과 대추가 넉넉했던 어느 해 겨울이었다.
약식을 해보겠단다.
주부인
나조차도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평생 몇 번
해볼까
말까 한
별식이거늘
레시피를 쭉 훑어보더니
"
어허 아무것도 아니구먼~"
내뱉고 주말이 되자 여분의 재료를 사다가
밥솥에
하나하나 넣고
쉽게
만들어 냈다.
이 남자는
음식 만들기에 겁이 없었다.
일단 해보고 망치면 망치고
성공하면
맛나게
잘먹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대개 사람들처럼
"
돈 주고 사 먹고 말지" 란 생각을
애당초
하지
않았다
.
음식이
완성하기까지 오랜 기다림
,
복잡한
과정을
귀찮아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다.
주부들 조차 음식 만들기가 마지못해 해야 하는 노동이나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세상에서 제일 맛난 게 남이 해준 밥이라 하지 않던가!
그는
매일이 아닌 어쩌다 주말이 되어 앞치마를 두르고
놀이나
취미처럼 즐기고 있었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아마도
젊은
가장으로서 회사에서의 스트레스와
세상살이
의 걱정을
음식 만들기라는
취미로 애써 녹이며 살아가고 있던게 아니었을까
싶다!
애들과 나는 시어머니를 따라서
용기의 주문을 외쳐주었다.
맛난 요리도 좋지만 그때그때 치우며 요리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타고난
잠재력은
무사히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 쭉쭉 자랐다
떡볶이나 김밥은
정말 먹음직했다.
김밥은 밥만 퍼먹어도 맛있었다.
떡볶이는 한솥을 해서 하루 종일 먹어도
맵지않게
슴슴
하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학교앞 분식점보다 건강한 맛이었다.
초등학교 앞에서 팔아도
애들이
와서
사 먹을만했다.
아마도
대박일듯!
대파를 뵦아
고소한
파향이
듬뿍나는
새우젓으로
간을 한
볶음밥
!
데친 대파 말이
한입
닭백숙
!
메뉴도
다양했고
국경을 마구 넘는
온갖
요리를
맛보게 해 주었다
.
여행
가서 그 나라의 신기한 맛을
어찌 기억해서 만들어 내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마치 전생이 주방장이래도 이상하거나 섭섭하지
않을 듯
싶었다.
우리 가족은 새로운 음식이 식탁에
탄생할 때마다 엄지 척하며 세상 다시없는
극찬의 찬사를
쏟아대며 그릇을 비웠다.
세상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하지 않던가!
칭찬에 날개를 달아준
특급
비법
이라면 그걸 맛보는 가족들의
입맛이
까다롭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솔직히 우리는 "간만 맞으면
군말 없이
잘 먹어요"과다.
뭘 해주면 해벌쭉해서
"
헤헤~ 저희는
없어서
못 먹어요
!
"
하며 좋아라 하고
달려들어
그릇을 비웠으며
심지어
혀로
싹싹 핥아가며
셀프
설거지까지
해주는데
누구라도 신이 나지 않겠는가
!
주말 낮에 소소한 가족 놀이처럼 모두가 재미로 마음에 다가왔고
함께 하고, 함께 맛보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덕분에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으로
한번 잡은 국자를 놓지 않고 있다.
자신감이 흐르고
흘러넘치더니
밖
에서도 실력을 뽐냈다.
남동생네 가서 전화 한 통화로
주문할 수제 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어린 조카들과 동생
부부
, 어머니까지
먹어보고는 아주 난리가 났다.
요리를 잘해서 아니 아니 신기해서다
.
어머니 표정을 보니 남동생이
그랬다면
어땠을지
안 봐도
그림이 그려졌다.
사위가 프라이팬을 잡으니
내 딸이 가정적인 남편을
만났다고 입꼬리가
하늘로 승천을 하셨다.
그래도 만약 아들이
내 눈앞에서 저러는 꼴은
절대 못 본다 하시는 거다
.
참으로 아이러니
이율배반이 아니던가!
나는 요즘 이런 미래를 꿈꿔본다.
은퇴후 동네 입구에
테이블
세 개
정도 놓인
자그마한 식당을
열어보면 어떨까!
은퇴한 노인 부부가 운영하는
예약제 가정식 밥집을 차려놓고
동네 이웃 손님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맛난 음식을
먹는 그림을
!
영업시간도
오후
2시까지다
.
"
할배네 식탁"
상상의
간판도 걸어본다.
꿈꾸는 게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저 잘될 거 같다는
마음이 드는 게
왠지 행복도 파도를 타고
넘실대며 달려오고 있는
거 같다.
keyword
떡볶이
김밥
밥상
79
댓글
10
댓글
10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페이지 성희
직업
크리에이터
세상 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공부를 하며 글을 통해 모든 분들과 공감하고 싶어요.
구독자
846
제안하기
구독
작가의 이전글
기다림의 이름으로
만남이 삶에 복병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