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언니를 알게 된 건 신발매장이었다.
수제화에 관심이 있어서 보고 있던
내게 신발보다 방금 우려낸 홍차를 권했다.
찻잔을 건네며 말하는 그녀,
옆모습에서 풍겨 오는 첫인상이 살짝
조급함이 느껴졌다.
다만 코끝에 풍기는 차향이
내가 평소 마시는 차종류라는 취향이 일치한다는 반가움에 편안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주 신을 슬리퍼에 수제화란 이유로
잠깐의 망설임만으로 꽤 비싼 가격으로
결제하고 나서야 알았다.
장사를 오래 한 사람의 특별한 친화력에
내가 지갑을 열었다는 걸.
은행과 병원가가 모여있는 중심가에
오면 길에서 언니와 자주 얼굴을 마주쳤다.
가게를 하는 사람치곤 자주 돌아다닌다 싶었다.
그렇게 스스럼없이 차 한잔 하던 게 쌓여가자 나는 그분과 영등포에 있는 한 사업 설명회장을 함께 들어가고 있었다.
난 쉽게 설득이 되는 유형의 인간은 아니다.
어른들 말씀에 고집이 장난 아닌 아이였다.
그런 내가 그곳까지 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실 오래전에 무릎부상으로 신발선택에 민감하던 차에 W언니한테 받은 중국에서 소문난 의사가 제조한 알약을 먹은 게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계기가 되었다.
이게 다리관절이 부드러워지고
통증도 줄었다.
안 먹던 약 성분을 섭취하면
잠시 나타나는 깜짝 효과일지 모르나
효과를 실감하니 고집을 살짝 굽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약을 다단계 판매로 구입하기에
나는 언니한테만 살 수 있었고
정식 사업자가 되면 본사로부터
직접 구매도 가능하고 판매도 하며
그 과정에서 50프로 가격으로
약을 구매하는 혜택이 있다고 했다.
사업자까지 해보겠다는 것은 아니나
내가 먹는 약을 어떤 사람들이 만드는지 궁금했다.
가보니 신세계 별천지였다.
사람들이 이런 곳을 어찌 알고
이리도 많이 와서 바글거리나 싶었다.
경품을 한다고 번호표를 뽑고,
초창기 사업자로 성공한 판매자들의
성공발표도 이어졌다.
무명의 트롯 가수가 신나는 노래로
분위기도 띄웠다
사람이 모이는 장소답게 볼거리와
들을 거리에 재미가 쏠쏠해 보였다.
드디어 회장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오늘 내가 가장 기대하는 순간이다.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단상에 오른
그가 보였다
그가 쏟아놓는 말들이 내 귀로 쏟아져 들어왔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머리를 맴돈다.
"조ㅎ팔"
비록 뉴스에서 잠깐 본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꾼이라던 남자의 얼굴이었지만
지금 단상에 선 저 사람과 생김새가 아닌 묘한 느낌의 접점이 겹쳤다.
순간 W언니의 잠시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녀의 눈빛과
단상의 남자가 닮았다.
소름이 돋았다.
스멀스멀 올라온 내 머릿속 안테나가
삐리리 감지를 시작한 것이다.
오면서 딱 한마디를 했다.
"회장님이란 저분 감옥 갔다 왔지?"
"어! 어찌 알아??"
거기까지 함께 동행한 사이라 같은 편이라 믿었던 터라 얼떨결에 언니는
진실을 말해 버리고 말았던 거였다.
그 후로 달리 보였다.
아니 제대로 보였다.
W언니네 가게에 오면 늘 와있던 여자들. 말없이 한구석에 앉아서
흐린 얼굴로 나직이 한숨을 쉬고 있던
그들의 말없는 표정이 무엇을 말하는지 읽히기 시작했다.
아니 분명히 알게 되게 되었다. 빚쟁이 채권자들이었던 거다.
행사장 동행 후로 언니가 가게 말고
자신이 투자한 화장품 회사 설명회,
코인 투자 설명회에 나와 동행을 권했다. 나는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덕담의 메시지만 보내고
거리를 두었다.
사적인 용건으로 종종 안부전화를
받으면 내용이 같았다.
너희 집 지나다가 네 생각나서
라는 말로 어느 날은
카드값 마감날인데 돈이 안 들어왔네
30만 원만 빌려주면 며칠 뒤 갚겠다는~
그다음은 돈 받을 데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아서 가게 월세를 못 내고 있으니
입금되면 바로 준다고
아들의 사진 스튜디오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해줘야 하는데 이자 넉넉히 줄 테니 빌려달라는 아니 투자하라는~
정말 이유도 핑계도 다양했다.
그래서 줬냐고요!
아니 다단계는 어찌 됐냐고요?
약은 계속 먹었을까요?
약은 그렇게 3개월만 먹고 중단했다.
효과는 있었으나 믿음이 약효를 막아섰다.
귀가 얇지 않아서 다행인지
나의 초감각 안테나가 잡아주어서
아님, 나의 소고집이 제대로 발동해서였을까! 나는 아니다 싶었다.
그렇다면 그 딴 곳에 왜 갔을까?
일단 내 방식이 그랬다.
들어보고 결정하자 주의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보고 나서
직접 판단해 보고 싶었다.
단순하게 살아온 나이기에
다양한 경험치가 적어
사람들도 잘 믿고
좋게 말해 해맑음과다.
단지 HSP성향 덕에 예민한 육감으로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왔던 거다.
행사장에 간 것은 그곳의 분위기,
오너라는 사람의 말과 인상을 알아보고 싶어서다.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범법자들을 화면으로 보는 것과 현장에서 보는 건
천지 차이라 한다.
그랬다. 현상은 리얼이고 날것이라 살벌함도 가식도 허위도 멋진 무대와 비싼 슈트가
다 가려주지 않는다.
비록 약효에 살짝 흔들리기도 했지만
믿음에서 약빨이 오지 않던가!
꺼림칙한 건 분명했다.
언니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나는 언니를 마음으로 따르고
가까워지고 싶었어. 진심이야.
언니는 돈이 필요해 나를 이용하려 한 거야?
빌려 줄 땐 못 갚아도 별 수없겠지!
그런 마음으로도 빌려줄 수 있겠지!"
수화기 너머 언니는 아무 말도 없었다.
언니는 더 이상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아마도 돈을 빌려주었다면
아니 떼일 각오하고 소액이라도 주었다면
가게 안의 다른 여자들처럼 한숨을 쉬며
가게 한 모퉁이 어두운 조명이 되어
남아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