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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보면 안 돼요!

여성 월간지의 부록, 주간지의 19급 문제

by 페이지 성희


남동생 둘과 . 우리 셋은 같은 학교에 다녔다. 종종 하교하는 시간이 맞으면

함께 집으로 향했다.

약속하지 않아도 수업이 끝나고

교문 앞에 있으면 저절로 만났다.

전교생이 180명인 자그마한 학교라서 그랬다. 학생도 적고 학교도 아담했다.

수업을 마치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할머니 말씀에 곧바로 집으로 오는 길에 어란애들은 참으로 많은 세상을 만난다. 여기저기 두리번대며 거리 구경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만난 친구들과

잠깐 동안 놀기도 하고 엄마들이 부르는 소리에 금세 헤어져 사라지기도 했다.

멀지도 않았던 거리의 집까지

우리는 흐느적거리며 걸어 왔다.

이번에는 벽에 붙어있는 영화 포스터에

눈이 꽂혔다.

예쁜 아줌마가 한여름도 아닌데도

어찌 저리 벗고 있을까? 우리는 쪼르르 달려가 한참이나 올려다보며

포스터 앞에서 신기한 듯 서있었다.

뭐라 뭐라 신나게 떠들면서 정신이 빠져있는데

"너희들 뭐 하냐?"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마다!"

엄마였다. 우리들을 마중 나온 엄마가 지나다가 어떤 애들이 뭘 보는 건가 싶어 봤더니 우리라서 소리를 치신 거였다.

반가웠다.

우연히 엄마를 만난 것도 좋고,

함께 손을 잡고 가는 것도 좋고,

저 아줌마는 왜 저러고 있어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오는 그 모든게 좋았다.

그런 영화 포스터가 있더라도 애들은

못 본 체 그냥 지나오는 거라 하셨다.


집에는 아버지께서 친구의 구독 권유로

매달마다 배달 오는 여성지가 있었다.

"여성 중앙"이다.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그 책은 국민학생이 보기에 모르는

알 수 없는 내용 투성이었다.

항상 별책부록이 딸려왔었는데 이게 문제였다. 신기하고 모르는 내용이라 해도 재미나라로 가득했다.

예뻐지는 미용체조 하는 법,

남편한테 사랑받는 대화의 기술,

모임에서 돋보이는 화장하는 법 심지어

부부만의 은밀한 러브 자세 그림까지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몰라도 별세계였다.

책을 좋아한 내가 뭐든 닥치는 대로 읽은 게 죄이고 문제였다. 국민학생이 여성지의 별책부록을 앍다니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나는 별난 애가 맞다.

그렇게 독서광의 특별한 책 읽기에

들어갔던 비밀 목록이었다.


그 당시에도 미성년자 불가 등급이라는 게 정해져 있어서 못 보게 하는 게

맞는데 나는 어떻게 해서 그런 걸 보게 되었는지.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고 호기심이 대단했나 싶다.


가끔 이웃에 사는 대학생이나 직장에

다니는 언니들이 불러서 놀러 가면

바삭하게 연탄불에 구워 옥수수 빵을 주시기도 하셨지만 또 한 가지

그녀들이 보는 주간지 "선데이 서울"이

알고 보면 그 당시 별천지급 책이란 걸 어렴풋이 알았다.

언니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빵을 뜯어먹고 있으면 귀엽다고

나를 불러놓고 나는 잊어 버린 채

주간지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있는 언니들에게 살짝 삐졌던 기억이 난다.

나보다, 고소한 빵보다 연예인 이야기에 빠져서 깔깔대는 언니들의 웃음소리가

귀에 울리는듯하다.



옛날에는 중고등학생들이 출입금지를 막으려고 교도주임 선생님들이 영화관이나 술집 심지어 분식점까지 지도 순시를 다녔다.

거기에서도 학생들은 언니의 옷을 빌려 입거나 아버지나 형의 옷을 빌려 입고 영화를 보고 리사이틀 공연을 보러 갔다.

하지만 거기에도 학교에 한 사람씩 있다는 "독사" 선생님이 관객인척 관객 사이를 누비며 눈을 희번덕거리며 학생들을

찾느라 훑고 있었다.

우리 학교에도 "썩은 고구마"란 별명의 학생지도 선생님이 계셨다. 썩은 고구마란 별명이 너무 잘 어울리던 무서운 선생님.

졸업식날 줄 맞추지 않고 흐트러지게

이동 한다고 졸업생들에게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야단치시던 대단했던

학생 주임 선생님!

지금은 고안이 되셨겠지.


고등학생 때 나와 절친들은

간이 작아서 감히 그런 모험을

감행할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사실 곳곳에 있는 무서운 지도 선생님 덕분도 있다.

맨 뒷줄 애들은 키도 크고 성숙해서 사복을 입고 머리를 풀면 대학생 같아 보였다.

남자 대학생들과 미팅도 하고 찻집에도 가고 청소년 관람금지 영화관에도 다녔다.


한 두 번 그런 파행을 하면 마치 어른이라도 된 듯 지들끼리만 속닥이며 어제 오장동 낙지골목에서 어쨌다느니 하며 킥킥대며 우리들과 다른 자기들만의 세상에 있고 으스대는 듯 우리와는 말도 나누지 않았다.

마치 어른이 되었다 착각이라도 하는겐지.



파행과 일탈의 유혹이 넘쳐서 우려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선행학습이 문제가 있듯 등급을 넘어선

정보의 노출도 아이들에겐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게 된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해도 자기 나이만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존재라서

지나치면 과부하가 걸리거나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과함은 부족함만 못한다.

그렇게 나도 걱정하는

꼰대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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