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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가 익으면 생각나요

인간극장 - "해영 씨의 이상한 진료실"

by 페이지 성희



환자와 의사가 스스럼없이 대하고 툭하면 떡이랑 반찬을 나눠 먹는 병원.

누가 의사이고 간호사이고 환자인지 모르게 모두 한동네 한가족이다. 잠시 머물다 가도 마음에 군불을 지핀 듯 훈훈한 병원이 있다.


전남의 한 재래시장

한 귀퉁이에서 여러 해 동안

내과와 정형외과 재활의학과를

같이 보는 병원이 있다.

정해영 원장 선생님은 원래 IT 회사에 다니던 웹개발자였다. 30대 중반에 위암 수술을 받고 생사의 기로를 건넜다. 개인사로 이혼의 아픔도 겪었다.


그 후 삶은 180도 바뀌었다.

깊은 수렁 속에서 곁에 남는 사람이 갈렸다.

삶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세상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병상에 누워있던 죽음 앞에서

그를 살린 의료인의 모습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국립의대에 진학하여 모든

수련기간을 거친 후 의사가 된다.

모든 면에서 그의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의사 면허를 따자 주변에서 대도시에서 고액 페이를 받는 의사가 되라고 했지만 그는 지금의 소도시 재래시장 안에서 문높이가 낮은 병원을 개원했다.

이곳은 보통의 병원처럼 진료를 보지만

다른 병원과 사뭇 다르다.


이른 아침 환자가 먼저 와 병원 문을 연다.

온돌로 된 침상을 덥히고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는 것도

또 다른 환자다.

먼 곳에서 출근하는 간호사들에게 아침밥을 챙겨 먹이기 위해서다.

따뜻하고 든든한 밥 한 끼는 진짜 사랑이다. 믿고 품는 엄마의 마음이다.


주방 찬장에는 매일 아침밥을 짓는 할머니 환자가 따라놓은 옥수 사발도 놓여있다. 오늘도 환자 손님으로 가득 차라고 병원 장사도 장사이니

잘되라는 기원의 성수다. 의사보다

환자가 주인인 병원이다.


냉장고를 열면 단골 환자의 이름이 적힌 반찬통이 수북이 쌓여있다.

오늘은 갓 담근 동치미가 익었다고

김치통을 통째로 들고 병원문을 들어서는 오래된 환자가 왔다.

붙임성 좋은 원장 선생님은 입맛을 다시며 동치미 국물 한 사발을 고구마와 맛보겠다고 조른다.


참 별나고 이상한 원장에 병원이다.

환자의 소박한 온정을 거부하지도 불편해하지 않는 지방 특유의 고유정서를 온전히 수용하는 병원만의 운영 방식이라 한다면 그렇다 볼 수 있다.


특색 있는 별난 병원인데 왠지 병원문을 두드려 열고 들어가 보고 싶게 한다.

언제나 병원엔 환자로 넘친다.

여기 오면 세상에는 아픈 사람 천지 인가 싶지만 병원에만 오면 더 이상 환자가 아니다.


이른 아침부터 의사보다 먼저 온 환자들로 가득 차 있다.

다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뜨끈한 온돌 침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진료순서를 기다린다.

병원 나들이가 일상이 된 어르신들이

사는 동네에는

이 병원을 찾아오느라 주변 도시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열성 환자가

유독 많다.


제대로 환자를 맞이하는 의사가

얼마나 귀하고 만나기 어려우면

하루를 꼬박 걸려

몇 번의 환승과 승하차의

시간의 기다림을 인내하며

늙고 병든 몸을 끌고

이 먼 길을 오겠는가!


오늘은 백세 어르신의 생신날이다.

원장님이 떡집에 주문한 백설기로 생신을 축하해 주었다. 환자 모두 백설기 한 조각을 받아 물고 100세 어르신의 건강을 기원드린다.

다들 마음속은 같은 생각으로 물들어 있을 것이다.

여길 계속 다니면 저 어르신처럼

백 살까지 건강하게 여기를 걸어올 수 있으리란 희망 한 자락이다.


누군들 100살을 살고 싶지 않으리.

넘쳐나는 먹거리, 볼거리에 따뜻하고

값싸고 질 좋은 입을 거리에 편리하고 신속하고 넉넉한 세상이 아니던가!


병원 방문이 나들이가 되어 가는 노인들에게 누구보다 의사 선생님이 그래서 중요하다.

당연한 말로 의사 선생님은 환자에 따른 적절한 검사와 처치와 처방이 우선인 건 말해 뭐 하겠나!

요새 세상은 명의란 가운을 걸치고

약팔이, 주사팔이, 수술팔이 의사로 빨간 신호등에 걸려있다.



환자의 입장에서 좋은 의사는 어떤 것일까?

우선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넉넉한 마음 기다림이 먼저여야 한다.

이야기만 잘 들어주어도 내 몸 상태와 마음까지 진단이 된다.

어찌 보면 이야기 과정에서 반은 고친 거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의사의 기본 덕목에는 환자의 아픔을 마치 내 몸처럼 공감하고 아파하는 측은지심이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이 병원의 원장님을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게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다.


그저 얼굴 한번 보고 아픈 부위를 살펴봐주고 손 꼭 잡아주고 청진기 한번 짚어주며 상냥한 미소와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눴을 뿐인데 환자들의 오래된 아픈 몸이 적어도 오늘만은 그럭저럭 견딜만하고 나은 듯 여겨지는 거다.


의사란 직업은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이 된 지 오래다. 트렌드에 맞춰 선호하는 직업이 달라진다 해도 여전히 갈망하는 최고의 직업군이다. 남들이 없는 능력을 실현하기에 그렇다.


의학이란 어려운 공부를 하고 전문의사로서 자격을 갖추기까지

고된 노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의사들은 대개 프라이드가 높다.

매일 아픈 사람만 만나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세균과 위험과 긴장과 두려움이나 좌절과 맞서는 현장에서 버티는 의사는 존경과 감사를 받아 마땅하다. 적절한 보상과 대가가 잘 이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명을 살리고 적절한 처치와 치료 아울러 인간적인 영역까지 요구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젠 의료행위도 서비스업종으로서 경쟁시장 영역에 끼어들었다.

예전처럼 권위적이고 심플한 태도로 병원유지가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다.



인간극장은 독특한 삶을 사는 많은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오랜만에 정말 존경할만한 의사 선생님이 주인공이라 깊은 감동을 느끼며 보았다.

인간이 만드는 교감을 넘어서서

귀감을 보여주는 안방극장이었다.

우리 주변에 자신이 겪은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공감하고 정성과 사랑으로 진료할 수 있는 의사들이 이 감동 영상을 보고 많은 생각을 품었으면 좋겠다.

의사를 꿈꾸는 분들에게 이 영상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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